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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재미있게 보고 있어… 연평도는 그쪽이 쏜 것 같은데 관심 없슴다!

생명얻는 회개 2011. 1. 17. 00:06

드라마 재미있게 보고 있어… 연평도는 그쪽이 쏜 것 같은데 관심 없슴다!”

북한 현지주민과 휴대폰 통화했더니

유마디 기자 

 

함경북도 무산군 30대 가정주부 두만강 오가며 옌볜 밭일로 생계유지
남자 700g, 여자 300g 보름마다 쌀 배급

“‘장마당’에 가면 남조선 물건 없는 것 없어 신라면 인기 삼성·LG TV도 팔아 남조선 수없이 많이 간다 나도 가고 싶다”

▲ 중국 화룡시 숭선진에서 바라본 함북 무산군 인광리 풍경. photo 조선일보 DB
“절대 남한, 북한, 김일성, 김정일이라고 얘기하지 마십시오. 이쪽, 저쪽, 영감, 꼬마라고 돌려서 얘기해야 합니다. 기자, 주간조선이라는 말도 안됩니다.”
   
   지난 12월 21일. 탈북자 김모(36)씨로부터 전화번호 하나를 건네받았다. 함경북도 무산군에 거주한다는 한 북한 주민의 휴대폰번호. 번호를 수첩에 옮겨적으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기자가 “북한 주민들과 통화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지 일주일 만이었다. 번호를 준 김씨는 지난 2009년 9월 북한을 탈출해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김씨는 번호와 함께 금기사항을 얘기해주며 기자에게 연방 신신당부했다.
   
   김씨는 지난 11월 기자에게 “고향인 함북 무산군에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동네 주민이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중국번호 휴대폰으로 한국에서도 통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기자가 북한 주민과의 전화통화를 부탁하자 김씨는 “남쪽에 와본 적이 없는 북한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거부감을 가질 수 있으니 먼저 전화해 그쪽 의향을 물어보겠다”고만 말했었다. 북한 주민과의 통화는 김씨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김씨는 사무실 한편의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북한 사람이 꺼려할까봐 (기자를) 한국에서 북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해놨다”며 “통화 중에 절대 신분이 기자라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에게서 받은 전화번호는 ‘155’로 시작했다. 우리의 SKT·KT 등에 해당하는 중국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롄퉁(聯通·China Unicom)의 휴대폰 앞자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화기를 받아들자 김씨는 기자에게 “국경지역은 도청 지역이라서 까딱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 사람이 위험할 수 있다”며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다시 주의를 줬다. 한 사람의 생명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통화를 한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기자가 “통화를 할 사람이 혹시 통신원은 아니냐”고 묻자 그가 “아니다”며 “함경북도 무산군에 사는 30대 중반의 가정주부”라고 했다.
   
   
   심한 북한 사투리 알아듣기 힘들어
   

▲ 구글어스에서 내려다본 무산군. 위쪽 동그라미 부분이 무산군 장마당이다.

번호를 누르자 신호음이 흘러나왔다. 혹시라도 말 중간중간 실수할지 몰라 노트에 금기 단어와 질문을 미리 적어뒀다. 하지만 수화기 넘어로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목소리가 가늘고 여린 여성이었다. 중국 동포인 ‘조선족’이 쓰는 사투리와는 조금 다른, 진짜 함경도 말이었다. 이날 통화에서 기자는 통화 내용의 30% 정도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가 구사하던 억양과 북한에서만 쓰는 단어가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질문을 대여섯 번 던지기도 일쑤였다. 상대방은 그때마다 일일이 다시 답해줬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지켜보던 김씨가 수화기를 건네받아 대신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설명해주기도 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통화내용.
   
   - 반가워요. 사는 데가 어디세요. “함경북도 무산군. 오늘은 화물차 타고 강타기했슴다. 옌볜입니다.”
   
   - 강타기가 뭐죠. 거기서 뭐하시는데요. “강 건넜단 말임다. 조선족집 밭에서 품꾼 중임다.”
   
   - 두만강을 건너는 게 가능한가요. “경비대한테 통행료 준다하고 왔더랬슴다. 우리 마을에선 중국이 보임다. 옌볜까지 인차(금방) 감다.”
   
   - 누구랑 갔는데요. “이웃집 언니랑.”
   
   - 거기서 일하면 하루에 얼마나 버세요. “하루 하면 인민폐로 30~50위안(약 5100~8600원) 받슴다.”
   
   - 뭘 수확하시는데요. “옥수수, 벼.”
   
   - 가족들은요? 남편은 뭐 하시나요. “남편은 광산서 일함다. 돈이 없어 내가 강타기하는 겁니다.”
   
   - 쌀 배급은 충분하게 받으세요. “고저 기준량대로. 그쪽 700구람, 안해(아내) 300구람, 자식 300구람.”
   
   - 배급은 어떻게 받으시는데요. “보름에 한 번 받슴다.”
   
   - 겨울에 집에서 보통 뭐 드세요. “쌀, 밤, 옥수수 먹슴다.”
   
   - 매일 국경을 넘는 게 힘들지 않나요. “힘듬다. 1년에 수확철이 두 번이라 기회가 없슴다.”
   
   - 인민폐로 일당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요. “되거리함다. 암시장 가서 우리 걸로 바꿈다.”
   
   
   통화 상대방인 김씨(33)는 광산에서 일하는 남편의 배급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주기적으로 두만강을 건너고 있다고 했다. 그가 살고 있는 무산군은 북한 최대의 철광석 산지. 무산의 철광석 매장량은 수십억t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급은 한 달에 두 번, 남자에게 부양가족이 딸린 경우 아내는 300g, 자녀는 소학교 300g(중학교 이상 500g)의 쌀을 더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무산군의 경지 면적은 군 전체 면적의 5%밖에 되지 않는다. 5% 중 밭이 90.5%이고, 논은 4.6%, 과수원이 4.7%로, 쌀이 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남편이 직장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기 때문에 도처를 떠돌며 이른바 ‘품꾼살이’를 하는 건 김씨의 몫이라고 한다. 그에게 하루 일당을 받으면 어디에 사용하느냐고 묻자 “장마당에 가서 되거리(중개상을 통한 환전)한 다음 쌀이랑 라면 등을 구매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물건도 장에 흘러나와
   
   김씨에 따르면, 과거 장마당은 개인의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이나 부업으로 만든 생산물 정도를 매매 또는 교환하던 곳이었지만 요즘에는 전자제품, 한국 식재료, 화장품 등 거래 품목이 다양해졌다. 배급 제도로는 원하는 물품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주민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장마당도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김씨는 “특히 북한 당국의 단속이 엄격한 옷감, 휴대폰, 한국드라마 CD 등의 거래도 이곳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물품들은 대부분 가격을 적은 목록이나 샘플을 보여주고 뒷거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무산군 골목 장마당에서 먹거리와 생필품 등을 구매한다”는 김씨에게 “장마당에 한국 물품은 어떤 것들이 있느냐”고 묻자 “웬만한 건 다 있다. 없는 게 없다”고 했다.
   
   - 한국 라면은 먹어봤나요. “네. 신라면 많이들 먹슴다. 조선돈으로 300원, 중국제는 250원. 다른 것도 다 있슴다.”
   
   - 한국 물건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라면, 내의, 화장품. 없는 것 없슴다. 화장품은 다나한. 나는 비싸서 못 씀다.”
   
   - 한국 가전제품도 있나요. “쿠쿠 밥가마, 삼성·LG 테레비, 사진기 있습니다. 부자들은 다 씀다. 우리집엔 없슴다.”
   
   - 개성공단 물건도 흘러나옵니까. “있습니다. 가죽신, 로동장갑, 옷. 인기 좋슴다.”
   
   - 북한 화폐라 가격이 와닿지 않습니다. 쌀은 얼마인가요. “지금 1㎏에 조선돈으로 1500원 정도. 라면이 300원이니 많이 비싼 건 아님다.”
   
   - 곧 1월 1일인데 어떻게 보내시나요. “신정? 뭐이, 만두 먹고 송편, 농마국수 하지. 세배하고.”
   
   - 농마국수가 뭔데요. “감자 갈아 녹말 만들어 누룬 거. 맛있슴다.”
   
   - 원래 구정에 세배하고 안그래요. “구정은 아니, 설(신정) 크게 보냄다. 이쪽서 가장 큰 명절이지.
   
   - 혹시 한국드라마 본 적 있나요. “자주 봄다. 지금처럼 강타기하면 옌볜서 바로 볼 수 있슴다.”
   
   - 북한에선 어떻게 보는데요. “장마당서 개인이 CD를 팜다.”
   
   - 얼만데요. “한 장에 500~600원.”
   
   - 가정집에 CD 트는 기계가 있나요. “웬만한 집 다 있슴다.”
   
   - 최근 본 것 중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뭔가요. “메어리눈 외박 중.”
   
   김씨가 즐겨 본다는 한국 드라마는 배우 문근영·장근석 주연의 ‘매리는 외박 중’이었다. 지난 11월 8일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KBS2TV 월화드라마로 12월 28일 종영했다. 김씨가 영어 발음이 익숙지 않아 ‘매리는’을 자꾸 ‘메어리눈’이라고 하는 통에 드라마 이름을 알아듣는 데만 5분이 걸렸다. 결국 전화를 기자 맞은편에 앉은 탈북자 김씨에게 바꿔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탈북자 김씨에 따르면 북한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이 없다. 때문에 북한에서 가장 큰 명절은 신정이며, 개인은 생일을 가장 중요한 날로 지낸다. 북한에선 구정보다 신정을 더 큰 명절로 친다고 한다.
   
   
   총 3번에 걸쳐 통화
   

▲ 한 북한여성이 장마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청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감한 질문을 하기가 곤란했지만 연평도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김씨에게 “그쪽(북한) 텔레비전에서 이번 일(연평도 사건을 가리킴)을 방송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기자가 다시 “옌볜에선 한국 텔레비전이 나오는데 한국 뉴스로도 봤느냐”고 묻자 또 “그렇다”고 답했다. 김씨에게 “두 매체를 다 접했는데, 누구의 말이 맞는 것 같냐”고 물었다. 김씨의 말이다.
   
   “그쪽(한국)은 우리가 쐈댔고, 우리는 그쪽이 쐈댔고, 나는 장군님이 맞는 것 같은데…. 연평도는 그쪽이 우리를 공격한 거 같은데. 뭐 잘 모릅니다. 관심 없슴다.”
   
   김씨는 이번 연평도 사건을 남한의 북침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탈북을 의미하는 말인 “그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기서 수도 없이 많이 간다(탈북한다는 뜻)”며 “나는 돈 없지만 기회되면 그쪽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기회가 되면 여기서 한번 뵙고 싶다”고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씨와 통화한 시간은 약 30여분. 중간에 서로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말이 끊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다시 전화 번호판을 누르면서 총 세 번에 걸쳐 통화했다. 전화를 끊은 기자가 탈북자 김씨에게 “연평도 사건을 철저한 북침으로 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직접 확인하니 놀랍다”고 하자 “그게 북한 사상교육의 위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장마당에서 휴대폰 암거래
   
   탈북자 김씨에게 북한에서 중국 휴대폰을 소지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묻자 김씨가 “무산군은 북서쪽에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맞닿은 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중국 기지국이 통한다”며 “북한 주민들이 암암리에 휴대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한 10년쯤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산군은 함경북도 중부 내륙지대에 있는 군으로 북동부는 회령, 동부는 부령과 청진, 남부는 경성, 서부와 남서부는 연사와 맞닿아 있으며 북서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접해 있다.
   
   휴대폰을 소지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으냐고 묻자 “걸리면 교도소행이지만 휴대폰과 번호는 장마당에서 암거래로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씨는 “기종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비밀리에 외부에 북한 내부 소식을 알리는 통신원의 경우 한꺼번에 3~4개의 번호를 구매해 돌아가며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탈북자인 김씨의 경우도 같은 방법으로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