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 소식/북한교회소식

박스에 아기시체가 차면 밖으로 옮겨졌다.

생명얻는 회개 2011. 1. 23. 14:11

박스에 아기시체가 차면 밖으로 옮겨졌다. 
데이빗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에 나오는 영아살해 증언들
좌측 글을 읽다보면 출애굽직전에 바로가 행한 영아살해와 이를 어기고 하나님말씀을 들은 산파들의 장면과 너무도 같습니다. 이제 북한은 멸망합니다. 출애굽당시의 바로처럼 말입니다. 반드시. 
◎ 경비대원은 아기의 한쪽 다리를 잡아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 던졌다. 박스에 죽은 아기 시체들이 가득 차면 밖으로 옮겨져 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인권운동가 데이빗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에 나오는 탈북여성들의 영아살해에 관한 증언들을 일부 소개해본다.

산모가 보는 앞에서 박스에 버려져 죽어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충격적이다 못해 가슴이 찢어진다. 그러나 더욱 참담한 일은 이런 악마적(惡魔的) 범죄가 지금도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이 나라 많은 사람이 공범(共犯)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청년이라면 金正日에 의해 저질러지는 전대미문의 만행에 대해 "내게 총을 달라"고 외쳐야 한다. 우리의 누이, 동생을 구하기 위해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한다.

《南신의주 道집결소(2000년 5월). 증언자 최영화(25) ; 구금자 중 10명의 임산부가 있었고, 이 중 3명은 임신된 지 8개월 이상 된 여성들이었다. 崔씨는 산모를 돕는 일을 맡았다. 산모들은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담당자들은 산모와 崔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젖은 수건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산모는 실신하고 崔씨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됐다. 다른 아기들도 산모 앞에서 죽음을 당했다. 》

《南신의주 道집결소. 증언여성 A(66) ; A는 7명의 아이를 받아냈지만 7명 모두 죽음을 당했다. 첫 번째 아기는 중국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28세의 任이라는 여성의 아이였다. 그 아기는 산모가 중국에서 임신을 해 양양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몸집이 컸다. A는 출산 당시 아이의 머리를 잡아 빼주었고, 탯줄을 끊어 주었다. A가 아기를 받아내고 모포로 감싸주었을 때, 경비대원은 아기의 한쪽 다리를 잡아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 던졌다. 박스에 죽은 아기 시체들이 가득 차면 밖으로 옮겨져 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金이라는 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산모는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A가 아기를 쓰다듬어 줄 때, 아기는 그녀의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경비대원이 와서 A에게 소리 지르며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A가 머뭇거리자 경비대다원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고 이로 인해 A의 이가 부러졌다.》

《이틀 후 강제 분만된 2명의 아기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아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록 얼굴은 노래지고 입술을 파래졌지만 아기들은 여전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비대원들이 와서 아직 두 명의 아기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머리의 부드러운 부분을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고 A는 경비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비대원들에게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1999). 증언여성 B(30대 중반) ; 집결소 구금자의 80%가량은 여성이었고, 그 중 12명가량이 임산부였다. 경비들이 임산부들의 경우 「배신자의 자식」을 뱃속에 가졌다는 이유로 음식이나 물을 잘 주지 않았다. 하열을 일으키기 위해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B는 몇 명의 임산부들이 끌려 나가, 낙태를 위한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다시 농포 집결소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출산을 위한 준비된 방에서 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들은 바구니에 담겨 비닐에 싸인 채 근처의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2000). 증언여성 C ; C는 8개월 된 태아 3명이 낙태되고 7명의 아이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을 바닥에 뒤집어 눕혀놓았다. 어떤 아기는 즉시 사망했고, 어떤 아기는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도 생존해 있는 아기들은 경비대원들이 데려다가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다른 방의 문에 서 있던 女수감자들은 방바닥에 눕혀져 있는 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이 중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산모들이 아기들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들어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온성 노동단련대(2001년). 증언여성 D(38) ; 10명의 임산부가 강제낙태를 당한 후 바로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