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구원,구제/세계선교사관대학

귀츨라프 선교사 이야기

생명얻는 회개 2010. 3. 30. 10:18
우리 민족은 사천년동안 시간은 있었으나 역사는 없었고, 사람은 있었으나 삶이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 조용한 아침의 나라 ' , 은자의 강산이었던 이 땅에, 하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이 있었기에 이들을 부르시는 , 주님의 음성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 주님의 음성은 ,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들려지게 되었는데 , 오늘은 , 가장 먼저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린 귀츨라프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귀츨라프 선교사님은 모리슨의 중국 선교이야기를 듣고 감화를 받아 , 이역 땅 홍콩에서 , 세상을 떠나기까지 한 평생을 오로지 중국선교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입니다.

또한 그는 우리 나라 땅을 처음으로 밟고 복음을 파종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 1832년 7월 17일 거센 바람은 한국이 보이는 곳까지 우리를 몰고 갔다. '

그는 중국 연안 도시들을 항해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 바람에 밀려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것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황해도 장산곶 부근이었습니다.

그는 1개월이 넘도록 한국에 머물면서 ,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그 활동한 상황이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7월 17일 , 고깃배를 타고 있는 남루한 차림의 두 어부를 만났고, 그 중 한 노인에게 성경과 사자표 단추를 주었더니 매우 좋아하였다.
7월 25일 한국 관원의 요청으로 배를 , 고대도 안항으로 옮겨 정박하였으며, 섬 사람들은 신기한 서양배와 서양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는데,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성경과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다. '

그는 섬 주민들이 유행성 감기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 지참한 의약품으로 치료해 주었으며 , 섬 사람들을 설득하여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 주면서 , 성경을 나누어 주고,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 국왕 순조에게 선물과 함께 통상을 요청하였으나 ,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씁쓸한 심정으로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는 우리 민족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7월 27일자 항해기에서 , 정부의 금령 때문에 복음을 마음것 전할 수 없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 하면서 , 이미 배포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실 것을 믿으면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 조선에 파종된 하나님의 진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없어질 것인가 ?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리라. 그들은 다른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질투하리만치 편협한 것 같지 아니하였다. 이 나라에는 종교가 거의 없는 것이 명백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쇄국정책을 거두어 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

그의 기도는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
그의 방문이후 중국에서는 조선 선교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중국에서 사역하고 계시던, 윌리엄슨 선교사는 한국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 최초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으로 오게 된것입니다. 윌리암슨 선교사는 중국에 오는 한국 상인들을 전도하였고, 한국에 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였습니다. 그의 만주선교와 만주를 통한 한국선교의 깊은 관심은 로스와 매킨 타이어 같은 신실한 후계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선교의 문은 이렇게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열려지게 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