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교사 이야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일본에서 사역하셨던 , 선교사님들의 우리 민족 사랑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중국이 1840 년 아편전쟁으로 문을 열면서 , 선교사가 중국에 자유롭게 들어 갈 수 있었다면, 일본은 1858년 미 일 수호 조약이 체결된 , 그 이듬해부터 선교사님들이 자유롭게 일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은 중국에 장사하러 많이 들어가게 되고 , 또 일본에도 유학생들이 많이 가 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사역하고 계시던 선교사님들은 조선 민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 하였고, 앞으로 조선이 문을 열리면 , 본격적인 전도 활동을 하기 위해 성경을 번역하면서 , 조선민족 복음화를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870년대에 이미 , 일본에는 150명이 넘는 선교사님들이 사역을 하게 되었고, 그 선교사님들은 우리 나라 유학생들에 만나면서 , 한국선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갔던 것입니다. 유학생 가운데 , 처음으로 이수정 이라는 사람이 선교사님들을 통해 예수를 믿고, 1883년 4월 29일 주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수정의 개종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선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성서공회는 이수정과 함께 성경번역을 착수하였고, 이수정은 자신이 맛본 기쁨과 복음의 비밀을, 당시 김옥균의 인솔로 일본에 가 있던 30여명의 유학생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에서 이수정과 성경번역을 하였던, 루미스 선교사님은 1883년 7월 5일 이렇게 선교편지를 보냈습니다. ' 지난 주일에는 3명의 한국인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수정은 현재 12명의 기독신자 내지는 구도자들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번역 일과 관련하여 전도 일도 준비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 1883년 12월 16일 한성순보 발행을 위해 유학하고 있던 청년 박영선이 세례를 받음으로 , 7 - 8 명의 수세가가 동경에서 신앙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고, 이것이 1883년 말 도오쿄에 세워진 최초의 한인교회가 되었습니다.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된 1882년 , 민영익을 포함한 7명의 견미단이 미국을 견학하고 있을 때 고우처 목사님은 그들을 기차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는 조선민족에게 문이 열렸다는 정보를 듣게 되면서 , 즉시 , 유산을 드려 조선민족을 선교해 달라고 선교부에 요청을 하였습니다. 선교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는 일본에서 사역하고 있는 메클레이 선교사에게 편지를 보내 , 조선이 문이 열렸으니 조선을 꼭 방문해서 선교의 길을 찾아 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메클레이 선교사는 김옥균의 나라사랑과 마음을 같이 하여 , 1884년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종황제를 만나서, 조선에서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보가 전해지자 미국선교부에서는 조선에 갈 선교사를 모집하게 되었고, 이때 죤 헤론 , 언더우드, 아펜셀러 같은 훌륭한 선교사님들이 우리 민족을 위해 , 선교사로 가겠다고 지원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 민족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미전도종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 그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민족복음화를 위해 기도로 반응하였고 , 선교헌금으로 반응하였고 선교사로 반응하였기에 , 우리 민족은 복음화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단 한번도 복음을 못 들어보고 죽어 가는 수많은 민족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들려 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응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일에 동참하여 주님의 가슴을 시원케 하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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