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녀들의 어미/로마가톨릭은 로마의상속자

다시 부활한 로마황제

생명얻는 회개 2015. 9. 20. 14:45

다시 부활한 로마황제

AD 313년 콘스탄틴은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밀란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불붙은 십자가의 환상을 보아서 콘스탄틴이 승리했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기독교가 공인됨으로써, 더이상 황제에 대한 예배도 없어지고, 이교우상에 대한 예배도 없어졌습니다.
이교도 로마체제, 즉 페이건 로마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가톨릭 로마체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인정하고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그는 죽을때까지 로마의 모든 이교들의 총대표, 곧 폰티펙스 맥시무스의 직위를 가진자였습니다.
도덕적으로도 그는 자기 아들과 아내를 처형하는 등, 이교로마체제의 황제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가 과거의 황제와 다른점이 있다면,
과거의 황제들이 황제권 사수를 위한 어용종교의 역할을 이교도 교직자들에게 맡겼던 것과 달리
콘스탄틴은 기독교 교직자들에게 맡겼다는 점과 과거의 황제들이 이교에게 부여했던 온갖 특권을
콘스탄틴은 기독교 교직자에게 부여했다는 점 정도입니다.

326년에 콘스탄틴 황제는 처형된 자기 황후의 궁전인 라테란 궁을
로마시의 주교인 실베스터에게 공관으로 주었습니다.
로마시의 주교가 황제의 황후, 곧 황제의 정부자리에 앉게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기독교의 교직자들은 황제의 통치권 사수를 위해 이교의 교리와 타협하게 됩니다.

여기에 AD 330년 콘스탄틴황제는 수도를 로마시에서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고 자신도 옮겨감으로써,
황제가 떠난 서로마의 로마시에 남아서 서로마를 지키게 된 로마주교의 지위가 더욱 격상됩니다.



이렇듯 로마제국의 정치적 지배권의 핵심이 로마시에서 콘스탄티노플시로 빠져나감으로써,
로마시에 남은 로마교회의 대표자, 곧 로마시의 주교가 콘스탄틴 황제의 대리자가 되어
황제권을 대신해서 서로마 전역에서 세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AD 300년대부터 로마주교의 부와 축재와 사치는
세속적 군주가 누리는 삶에 뒤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틴 이후 로마제국은 동서로 양분되고, 동,서 로마에 각각 로마황제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런데 동로마에 비해 서로마에 대한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습니다.
AD 300년대 후반부터 고트족을 필두로 하여 게르만족이 대거 남하하며 서로마제국을 침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AD 476년 서로마황제가 폐위되고 서로마제국이 몰락하자, 프랑크 왕국이 들어서게 됩니다.
로마주교는 프랑크 왕국의 왕인 클로비스 1세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고 그에게 왕관을 씌워줌으로써
로마주교는 프랑크를 통일한 첫번째 왕인 클로비스 1세의 왕권을 대외적으로 공인하였으며,
이로써 로마주교는 프랑크 왕의 대부가 됩니다.


<클로비스의 영토확장>

클로비스 1세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로마의 주교의 지지를 얻은 덕분에 구 서로마제국내의 실권자가 되고,
그렇게 얻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로마주교에게 더욱 충성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로마주교가 프랑크 왕의 위에 있는자, 곧 왕의 섭정자의 지위가 된 것입니다.
이후, 피핀을 필두로 한 카롤링거 왕조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을 로마제국때와 비교해보자면, 로마주교는 로마황제에 비견되고
이민족 왕들은 로마황제에 의해 파견된 로마제국내의 각 지역 총독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로마주교를 교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서 로마의 황제가 없어진 후에 로마 사람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조직을 유일한 국가 조직으로 알고
로마 주교를 전 카톨릭 교회의 교황으로 섬기게 되었으며,
또 사실상 대교황 레오는 훈족 왕 앗틸라의 로마 침입을 막아내고(AD 452),
대교황 그레고리(AD 560-604)는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막으면서, 실제로 로마 국왕의 일을 맡아 보았다"
-이해남, 세계사(1950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로마주교가 로마의 황제를 계승한 로마황제의 부활판, 곧 교황이 된 것입니다.
이전에 콘스탄틴이 수도를 천도하여 동로마로 옮겨갔을때부터 이미 로마주교는 황제처럼 인정되어 왔었습니다.
다음은 가톨릭 추기경 뉴만의 언급입니다.

"제국의 힘이 800마일이나 떨어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갔을 때, 로마의 교황은 독립된 주권을 지니게 되었다.
교황권은 제국이 와해되자마자 곧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이 몰락하자 더욱 발전되었다."

여기다가 레오3세를 필두로 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과 동로마 교회의 교직자들이 벌인 우상숭배타파 운동을
로마주교가 이민족 왕들과 연합하여 저지하고 나서자,
결국 동로마 황제들이 로마주교의 주장대로 우상숭배타파를 포기하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로마주교는 더욱 위세등등해져서 동서 로마제국내의 모든 교회들의 최고 교직자를 자처하게 되었고,
이후, 정치적으로도 서로마의 이민족 왕들과 동로마의 황제를 넘어서는 초월적 통치권자로써 자리잡아 갑니다.

그러므로 교황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두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과거 로마제국 황제의 통치권을 계승하여 모든 왕들을 다스리는 자라는 의미와,
과거 로마제국내의 모든 교회의 우두머리, 곧 수위권자로써 모든 교회를 다스리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황이 세속적 황제권자와 종교적 수위권자라는 두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두 손가락을 치켜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로마 주교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로마황제의 계승자이자 전체 교회의 교도권자임을 자처해 왔습니다.
이를 정당화하기위해 로마주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자신이 로마주교로 인해 나병이 치료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로마주교에게 서로마 지역과 이탈리아의 세속적 지배권을 기증하였으며,
아울러 콘스탄틴 황제는 로마주교에게 과거 전체 로마지역의 각 핵심교구들인
안디옥,알렉산드리아,콘스탄티노플,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수장으로써의 입지를 보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AD 777년 로마주교 아드리안이 프랑크왕 샤를마뉴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실제로 등장합니다.
샤를마뉴를 비롯한 프랑크 왕들은 교황들의 이런 거짓 주장을 사실로 여기고
교황에게 충성하는 것을 마땅한 도리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교황에 충성함으로써 교황으로부터 왕권을 공인받아
자신들의 세속적 통치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이민족 왕들은 로마주교가 모든 왕들의 위에 있는 초법적 권력자임을 인정하였고,
로마주교는 이들 왕들을 인정해주고 이들 이민족 왕들 위에 군림하는 왕들 위의 왕이 된 것입니다.



-바티칸이 주조한 동전 "OMNES REGES SERVIENT EI : 모든 왕들이 그대를 섬기리"-

왕들 위에 군림하는 교황체제,이것은 유럽통치체제의 원리로써 이후 천년이 넘게 지속됩니다.
가톨릭 교회법 초안 "Satis Evidenter"는 교황이 왕들위의 권력자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신성한 국왕 콘스탄틴에 의해 하나님이라 불렸던 것이 확실한 교황은...
어떠한 세속적 권력에 의해서도 구속되거나 조금도 격하되지 않는다.
하나님(교황을 말함)은 인간에 의해 심판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런 명분을 바탕으로 교황은 각국의 왕들을 다스렸고
동프랑크의 왕(하인리히 4세)는 사흘간을 눈밭에서 빌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추기경 메닝의 언급입니다.

"절대적인 교황의 세속권력은 7세기에 이르러서 견고하여졌다.
천이백년동안 로마교회의 주교들은 군주로서 통치하였다.
이기간 동안 교황은 진정하고 타당한 군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의 황제는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로만 가톨릭의 교황으로써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황제는 오늘날도 로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로마시에 본부가 있으며, 영토를 가지고 있고
각 국가들에 외교관을 파견하고 각 국가들의 대사를 파견받고 있으며,
이미 천년이 넘게 유럽을 다스려 온 것입니다.



계 17:18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게다가 모든 기독교의 우두머리이자 어머니 교회임을 자처하고 있을뿐 아니라,
한술 더떠서 교황은 로마황제처럼 모든 이교들의 지도자요, 어머니를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로마제국의 모든 이교들의 대표, 곧 대승원장이라는 직책은
로마황제가 가졌던 것으로 "폰티펙스 막시무스"라 불렸습니다.
로마황제들이 만든 동전에 PONT MAX 라고 찍혀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위의 왼쪽 동전이 네로황제의 동전인데 네로가 폰티펙스 막시무스이므로 PONT MAX 라고 찍혀있는데
위의 오른쪽 동전인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전에도 PONT MAX 라고 찍혀있습니다.
교황이 로마황제의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직책을 오늘날까지 승계해 온 것입니다.
교황은 말그대로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이 로마제국의 연장임은 명백한 것입니다.

과거 로마시대에 "로마인"이라는 명칭에 대한 표현은 크게 두가지 였는데,
라틴어 사용자는 로마인을 "로마인"이라고 불렀고, 헬라어 사용자는 로마인을 "라틴인"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로마"라는 단어 못지 않게 "라틴"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 것입니다.
이 "로마" 와 "라틴"이라는 단어는 로마제국 이후에는 로마가톨릭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여왔습니다.
영어사전에서 Rome 에 대한 설명을 보면, "1. 로마 2. 로만 가톨릭" 으로 되어있고,
Latin 에 대한 설명을 보면, "1. 라틴 민족의 2. 로만 가톨릭교도의" 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로마"와 "라틴"이라는 단어는 둘다 로마 가톨릭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어온 것입니다.
또한 교황 스스로도 자신을 사라진 로마황제의 후계자로 자처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로마황제는 죽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로마황제는 로만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으로 부활하여
중세에는 전 유럽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탄압했고,
오늘날은 전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정권과 자본과 결탁하여
미디어를 조종하고 반기독교단체를 지원하며 사회여론을 컨트롤하여
온 세상 프로테스탄트들의 인격에 테러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