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교사 이야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 나라에서 40 여년동안 사역을 하면서 평생을 드린 , 펜윅 선교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펜윅 선교사는 1889년 9 월 총각 선교사로 내한한 카나다 선교입니다. 그는 한국선교에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평신도 독립선교사로 내한하는데, 그 동기는 한국에 있는 죤 헤론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교수형 직전이라는 신문보도를 읽고 , 조선선교를 자원한것입니다. 그는 황해도 소래에 와서 , 한국 선교를 준비하면서 , 자신의 성품과 선교사로서의 자질에 많은 부족함을 발견하고 , 1893년 귀국하여 3년간 카나다에서 보스톤 선교훈련 학교에서 재훈련을 받으며 자신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 다시 선교사로 가기 위해 목사안수를 받고 , 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 한국 순회 선교회 '' ( The Corea Itinerant Mission ) 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1896년에 다시 내한하여, 함경도 원산에서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개성 호수돈여학교에서 사역하고 있던, 남감리교 선교사 하인즈 선교사와 결혼하여 원산에서 과수원과 농사를 하면서, 성경공부반을 조직해 전도활동을 하였습니다. 1901년에는, 당시 침례교 선교사였던 폴링 목사 부부와 가드라인 양이, 충남 공주에서 철수하면서 , 그들의 사역인 '' 엘라딩 기념 선교회 '' 까지 인수하여 , 본격적인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충남 강경에 대한 기독교회을 조직하고, 자급자립의 초대교회의 선교원리를 실천하였으며 , 토착적인 선교사업을 추구하면서 31개의 개척교회를 세웠습니다. 원산번역성경과 찬송가를 출간하고, 복음찬미를 편찬하였으며 , 일제의 간섭이 극에 달하자 , 교단명칭을 동아기독교회, 동아기독대, 동아기독교로 변경하며 그의 사역을 이어 갔습니다. 1933년 부인 하인즈가 순교하였지만, 그는 끝까지 원산에 남아서 , 남은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젊은 시절부터 40년 이상 조선 선교에 힘쓰시다, 원산에서 소천하였습니다. 열정은 있었으나 준비되어지지 않았던 젊은 시절 , 그는 자신의 준비를 더 철저히 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 , 헌신된 선교사의 모습으로 다시 한국 땅에 들어와 자신의 한평생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는 한국에 침례교를 세운 개척자로 , 그의 뒤를 이어 수많은 침례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신 분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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