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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40 년 브루언 선교사

생명얻는 회개 2010. 3. 30. 10:24
안녕하십니까 ?
재미있고 감동적인 선교사 이야기 시간입니다.
오늘은 대구 선교의 3 인방으로 알려진, 죤슨, 브르언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대구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아담스 선교사는 동료사역자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선교는 교회와 병원, 학교 사역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 의료선교사가 필요하였는데 , 의사인 죤슨이 1887년 12월에 내한하여 함께 사역을 하기로 하였고, 1899년 9월에 브루언 선교사가 내한하여 대구선교에 동참하여 대구 선교의 3 인방으로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지역의 선교를 담당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브루언 선교사님을 우리 민족에게 어떻게 부르시는지 브루언 선교사의 아름다운 간증을 소개합니다.

아담스 선교사와 죤슨 선교사는 대구지역에서 함께 일할 동료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후에 , 아담스 선교사는 죤슨 선교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 자네 혹사 아는 사람가운데 , 선교지에 가려는 생각을 하는 젊은이를 알고 있나 ? ''
죤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지만 , 우리 가족과 잘 알고 지내는 분의 아들이 선교사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
아담스 선교사는 그에게 바로 편지를 보내라고 하였고 죤슨은 그의 주소를 알지 못했기 자기 어머니에게 , 대구의 상황을 잘 설명한, 한통의 편지를 따로 써서 그 젊은이에게 전하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브루언 선교사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지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나 , 그는 옆집에 사는 중국아이를 보고 그가 쓰는 말과 글씨가 얼마나 어렵게 느껴지는지 , 자기는 동양권에 선교사로 가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하여,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쪽을 선교지로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어느 날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인도함을 구하였습니다. 기도 후에 자기 가족과 가까이 지내는 집 아들이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갔다는 것이 생각났고, 주소와 이름도 몰랐기 때문에 그 아들에게, 조선에 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편지를 한 통 써서 그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는 편지가 한국에 도착하는 시간과 미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휴가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물었던 조선에 대한 정보가 담긴 편지를 바로 받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죤슨 어머니는 한 날 두통의 편지를 받았고 , 아들에게 온 편지를 바로 브루언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너무나도 확실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대구 3인방 선교사 사역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죤슨 선교사는 자기 집에서 병원을 시작하였습니다. 환자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 직접 심방하여 약을 갖다주고 , 교회에 나올 것을 권유하여 병원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였습니다. 이 병원이 오늘날 대구 동산병원이 된 것입니다.
그가 본국에서 다녀올 때 사과나무를 가져왔고, 그것을 개량하여 오늘날 대구 지역에 사과를 많이 보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구의 사과미인은 선교사님을 통해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브루언 선교사는 경북지역 전역을 다니시면서 , 순회전도와 교회개척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나환자들을 돌보았으며 대남학교를 세웠고 대구 남산교회 당회장으로 시무 하면서 최선을 다해 우리 민족을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부인인 마르다 스코트 선교사도 신명여자 중학교를 세워 초대교장으로 봉직을 하여 대구 지역 선교에 이바지하시다가 50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하여 지금 동산병원 선교사 묘지에 묻혀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였는가는 그의 저서 '' 40 Years in Korea '' 한국에서의 40년 이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는 1940년 일본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하여 , 조선에 들어올 수 없었으나, 남은 생애 동안 조선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다가, 1957년 켈리포니아 산타쿠르츠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선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