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에 관한 질문과 답변
<질문0. 한국 기독교가 국민의례를 우상숭배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습니까?>
답변: 1949년 경기도에서 국민의례를 거부한 학생들이 40명 넘게 퇴학당하고 목사가 구속되면서
기독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전국적으로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1972년 국기에 대한 맹세 제도가 만들어 졌을때도,
장로교 총회는 이를 국기를 인격체로 섬기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우상숭배라고 정부에 시정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이런 국민의례 반대 분위기가 유야무야되면서
오늘날은 괜찮다고 보는 것이 대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법제정 초기에 모두 반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상숭배이냐 아니냐를 교리적으로 따지기에 앞서서,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법을 가진 나라는 20세기에 한국과 미국뿐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즉, 온 세상이 안하는 것을 미국과 한국만이 해온 것입니다.
국기에 대해 경례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3국만 한다. 나머지는 절대 안한다.
일본과 일본에 지배돼 우리도 모르게하는 한국, 가톨릭의 제수잇. 그 산하단체인 프리메이슨이 세운 미국외엔 어느나라도 하지 않는다.
중국도 절대 하지 않는다. 오바마와 시진핑의 국기에대한 경례시간에 시진핑은 그대로있고. 오바마만 한다.
중국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 공산당들도 안하는 짓을 우리는 하고 있는것이다.
이렇듯 20세기에 세계에서 이런 법을 가진 나라가 드물고,
더구나 기독교 교리적으로 우상숭배에 해당함에도 억지로 정당화하여 따르고 있는 것은
한국 프로테스탄트가 배도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일장기 배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도를 우상숭배로 여겼는데도,
오늘날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그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기'라는 우상앞에 절(경례)하는 것은, 하나님외에 다른 어떤것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는 대죄에 해당됩니다.
일본은 아직도 국기에대해 90도로 절(경례)한다.
일본 관방장관이 언론브리핑이나 국민담화를 낼 때 단상에 오르기 전, 단상에 있는 '일장기' 에 대하여 거의 90도에 가까운 절(경례)을 항상하고 올라간다.
현행 국민의례는 우상숭배입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다른신에게 경배행위)
국기에 대한 맹세,(하나님외 다른 우상사신에 충성맹세)
애국가 제창,(국가 국기에 대하여 찬양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죽은 자에게 경배행위 귀신섬김)
이 모두를 거부해야 합니다.
한국 프로테스탄트가 우상숭배를 합리화해온 행태를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입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에 이어 1972년에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제정되었을때,
당시 한국 장로교 교직자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우상숭배로 여기고 들고 일어났던 것입니다.
장로교 총회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국기를 인격화하여 섬기는 우상숭배로 여기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제정한 정부에게 시정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교는 이후 미온적인 태도로 돌아섰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한 장로교 학생들은 보호받지 못하여 퇴학처분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거부한 댓가로 국외로 나가서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며 오늘날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해도된다는 합리화가 대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슨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거부하는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국민의례를 반대하는 저를 보고 여호와의 증인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의 군대거부, 집총거부등은 잘못이다. 다윗도 여호수아도 사사들도 모두 무기를 들고 나라를 위해 싸웠다. 그러므로 여호와증인의 군대거부 집총거부는 잘못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해 보면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분명히 우상숭배이며,
말씀드렸듯이 이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은 한국 프로테스탄트들도 법제정 초기에는 모두 인정했던 사실입니다.
그런데 거부하기 어렵다고하여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태도입니까?
진리가 우리의 변명에 의해 바뀐단 말입니까? 우리가 진리의 잣대를 변조시킬 수 있습니까?
게다가 일제시대의 "순국선열에 대한 묵도"를 우상숭배라고 여겼으면서,
오늘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은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질문1. 다른 나라는 안하더라도 미국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미국내에서도 이것 때문에 많은 시비가 있어왔습니다.
이미 미국 일부 주법원에서는 애국을 다짐하는 특정방식을 국가가 정해서 요구하는 것은 위헌이므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국민에게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승소하였습니다.
애국을 고취하는 어떤 형식이 가장 정통한 방법이라고 법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21세기 이전에 오직 미국과 한국에만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을 보편적인 국가형태의 예로써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부의 분배문제, 인권문제, 사회복지수준등
여러면에서 선진국중 유일무이한 특이한 체제를 가진 나라가 미국입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우상숭배입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절대 행해서는 안됩니다.
<질문2. 미국 기독교는 죽은 시체 앞에서 고개숙이고 그 앞에 꽃 한송이를 갖다 놓는데요?>
답변: 죽은 사람 앞에서 고개숙여 기도하고 그 앞에 꽃을 갖다 놓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교회안에서 죽은 자를 강대상에 올려놓고 그 앞에 고개 숙이는 것은, 명백히 우상숭배입니다.
죽은 시체에 고개숙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체를 매개로 행해져온 엄연히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북미든 남미든 아시아든 아프리카든 심지어 고대 영국이든 어느지역이든 간에 행해져 온 행위입니다.
그 행위에서는 사람의 시체가 숭배의 대상이되거나 혹은 제물자체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천주교 미사에서 빵이 예수님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이 미사의 제물자체로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천주교와 성공회 미사에는 항상 이러한 의식과 마리아에 기도하는 등의 우상숭배가 동반되므로
어떤 미사든 미사에 참석하는 그 자체가 우상숭배이므로 결혼식때문이든,장례식때문이든,
다른 어떤 이유든 간에 거기에 절대로 참석도 하면 안됩니다. 참석하는 그 자체가 우상숭배입니다.
이는 이미 종교개혁 이래 개혁적 교직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 -가톨릭계통 학교- 에서는 의무적으로 미사를 시킵니다.
그러니, 천주교 학교와 성공회 학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라는 간판아래서 한다고 그 종교적 의미가 없어지는게 아닙니다.
이해가 안되시면 에스겔을 읽어 보십시오.
거기서 하나님은 성전에 죽은 왕들의 시체를 갖다 놓은 것에 대해 분개하십니다.
다른 이방사람들처럼 이스라엘인들도 그것에 일종의 숭배의 형식을 행했습니다.
겔 43:7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하였거니와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
이처럼 시체 앞에서 고개숙여 기도하고 꽃을 바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시체 앞에서 고개숙이고 그 앞에 꽃바치는 것과 비슷하게
고대 기독교에서는 또 유골을 숭배하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유골숭배 역시 명백히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시체든 무덤이든 우상숭배입니다.
죽은 자의 위패나 사진앞에서 고개숙여 기도하고 꽃을 바치는 것도 당연히 우상숭배입니다.
<질문3. 애국가의 단어문제가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답변:원래 애국가는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만, 후에 일부러 '하느님'이라고 바꾸었습니다.
단어문제가 중요치 않다면, 애국가에 나오는 단어자체를 굳이 바꿔놓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단어도 아닌 숭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의 이름을 바꾼 것은 분명히 큰 문제입니다.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엄연히 한국의 특정종교인 천주교에서 쓰이고 있는 명칭입니다.
우리는 천주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정부가 국민 다수를 포용하기 위해 일반적인 용어로 바꾼 것이라고 핑계한다하더라도
우리는 다원적 구원관을 갖는 종교가 아니며 우리의 용어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따라서 다원적 구원관을 갖는 종교들은 타 종교도 쓰는 용어에 교리상 동의할 수 있을 지라도
우리는 교리상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용어로 구태여 바꾸어 놓은 현행 애국가를 우리는 거부해야 합니다.
종교적 신념은 응당 보호되어야 할 국민의 기본적 권리입니다.
심지어 범죄자라 하더라도 범죄혐의를 조사받는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자신에게 요구되는
진술요구를 거부할 권리가 보장되는데, 하물며 일반국민이 인권침해적인 요구를 거부하고
그러한 요구를 철회할 것을 주장할 권한이 없겠습니까?
이러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국가권력입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신념에 어긋나는 국민의례를 절대로 따라서는 안됩니다.
<질문4. 미국 기독교는 국민의례와 장례풍속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요?>
답변:미국기독교인이 기준도 아니고, 미국기독교인이 가장 기독교적인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부시대통령이 일본에서 신사참배했을 때, 거기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미국기독교계 주류 교직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었습니까?
미국기독교계 수준이 이정도입니다.
미국의 교직자들은 우상숭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부시가 고이즈미 총리와 같이 신사에 갔을 때,
고이즈미 총리가 위패들에 고개숙일 때, 부시가 바로 옆에서 같이 고개숙인것을
"하나님께 하는 기도였다."고 핑계대며, 또 아무도 이의를 제기안했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아닙니까?
부시가 그렇게 명백히 위패를 시인하는 숭배적 행동을 하면서도
그런 핑계를 대기만 하면 우상숭배가 아닌게 된다면,
왜 주기철 목사가 굳이 순교하면서까지 신사에 고개를 안숙였습니까?
위패 앞에서 고개숙이며 "이것은 숭배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핑계했으면 그만 아닙니까?
오늘날의 사데교회가 미국교회입니다.
성경적으로 볼때, 미국인중에 구원받을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초대 기독교가 기독교 공인 이후 교리변개를 계속하며 죄의식에 무감각해진채로 배교해간 이후에,
프로테스탄트들이 성경을 기준하여 잘못을 깨달아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종교개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또다른 배교의 길을 가면서도 종교개혁 이전의 기독교처럼
자신들의 우상숭배를 깨닫지도, 뉘우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개혁을 우리가 해 나가야 됩니다.
과거에 프로테스탄트들이 그랬던것처럼, 이제 우리의 절대적 기준도
교회의 전통이나 관습이 아닌, 오직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국이 하니 괜찮지 않은가 하고, 같이 바벨론에 거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제 깨어있는 우리가 프로테스탄트의 본토인 미국에 이것을 알려서 깨우쳐줌이 마땅치 않습니까?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질문5. 미국 국민의례에 관련된 소송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주십시오>
답변:
1.'국기에 대한 경례'에 관련된 소송
원인: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여겨 종교적 신념으로 거부하여 퇴학당함.
판결년도:1943년
판결기관:미 연방 대법원
판결결과:웨스트 버지니아주의 국기경례법은 위헌이므로 무효이다.
판결자:잭슨판사
판결이유:
"종교에서처럼 국가의 상징에 대응하는 행동은 경례,인사,탈모,무릎꿇기등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떤 관리도 정치,조국애,종교 또는
기타의견이 갈리는 문제에 있어서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없다
누구도 시민들에게 그들이 품고 있는 신념을 말이나 행동으로 고백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이 사건은 완전히 우상숭배라는 종교적 신념에 기인한 것입니다.
잭슨판사가 말하듯이, 경례,인사,탈모,무릎꿇기가 바로 신념적 동의의 행위입니다.
종교적 숭배가 무엇인가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판결문에서 보듯이 법적으로는 경례,인사,탈모,무릎꿇기등을
종교적이든, 다른사안이든, 어떤 신념을 시인하는 행위로 보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누구든지 어떤 것을 시인하는 행위적 표현을 하기만 하면
그를 감옥에 넣어버리겠다고 대법원이 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판결을 내릴 이유는 없겠지요. 미국이 종교와 정치적 자유가 있는 한은.
단지 여기서 분명히 판시하고 있는 것은 그런 행위적 표현을 누가 명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입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자도 그런 것을 명할 수 없으니,
아무리 고관이라도 그런 것을 어떠한 국민에게든지 명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미국은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국가가 아닙니다.
이 판결에 의하면 국기에 대한 경례나 맹세 요구는 당연히 금지되어야하나,
오늘날에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2.'국기에 대한 맹세'에 관련된 소송
원인:국기에 대한 맹세는 개인의 신념을 침해하므로 요구하면 안된다는 것.
판결년도:2005
판결기관:캘리포니아 연방 법원
판결결과:국기에 대한 맹세 요구는 위헌이므로 국기에 대한 충성맹세 금지문 발령.
판결자:칼튼판사
판결이유:'under God'라는 문구는 정교분리를 선언한 헌법에 위배된다.
-한마디로 이것은 최근에 쟁점이 된 'under God'라는 문구가 결정적 쟁점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 역시 위헌으로 판단하여 판결되었습니다.
만약 최근의 여론의 쟁점이 우상숭배성에 관련된 쟁점이고, 그래서 이 소송의 사유가
1943년의 바넷처럼 우상숭배이므로 못하겠다, 그러니 요구하지 말라고하는 것이었다면,
판사가 여론을 뒤짚고 1943년의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뒤짚는 판결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이번에도 역시 위헌으로 판단했을 것이고 아마 1943년의 판결문 같은 판결문이 나왔을 겁니다.
1943년의 재판에서 보셨듯이, 1943년의 판결문은 단순히 경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지요.
거기서는 판결이유로써 행동뿐 아니라 말할것을 명하여도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미국이 워낙 전체주의적인 국가가 되어가고 있으니,
결과가 1943년과 달리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만.
참고로, 위 소송외에 역시 'under God'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뉴도우라는 사람이 냈던 소송건은
이와 달리 2004년에 미 대법원에 의해 각하되었습니다.
각하라는 것은 아시다시피 맞다,틀리다라는 자체를 따질 권리가 안되거나
법적으로 따질 의미가 없을 때 내리는 것이지요. 아예 재판자체가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뉴도우라는 사람이 자녀양육권 소송중이어서,
그가 자녀에 대해 소송을 낼 권한자체가 인정이 안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건은 해프닝으로 끝난거지요.
그러나 이 사람에 대해서도 2002년 캘리포니아 연방항소법원에서는
이사람의 주장대로 위헌이라고 판단하여 판결을 내렸었습니다.
그때는 법적으로 소송을 낼 권한이 있다고 보았었거든요.
여담이지만,
미국사회가 최근에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무원칙하며 전체주의적으로 되어가고 있냐하면,
일본이 1941년 12월 7일에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을 때
바로 그 다음날 미국이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개시했는데,
미국의 그 선전포고에서조차 미국 의회가결시 반대한 의원이 1명 있었습니다만,
이 2002년 6월 26일 캘리포니아 연방 항소법원에서 뉴도우라는 사람의 소송이
이 사람의 주장대로 위헌판결이 나자마자,
그날 백악관은 이에 반대하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발표했고,
그리하여 법무장관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으며,
미 하원은 그날 150명의 의원들이 의사당앞에 모여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하는 행사를 가졌고,
미 상원은 그날 '국기에 대한 맹세 지지와 상원 법률고문단이 이 문제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 의
결의안을 찬성 99표 반대 0표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렇듯이 사법부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다음날인 2002년 6월 27일에 당 법원인 캘리포니아 연방항소법원은
"전날의 판결의 시행을 무기한 보류하겠다."고 발표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미국입니다.
<질문6. 미국 국기에 대한 맹세는 미국 프로테스탄트가 찬성하지 않습니까?>
답변: 원래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근간이 된 내용을 기초한 사람은 아시다시피 침례교 목사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당시에 민간에 회자되기만 했지, 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맹세가 법제화 된것이 1942년입니다.
이때 법제화 된 내용은 원래의 내용과는 달리 기독교적인 의미가 없었습니다.
법제화시키면서 기독교 단어는 포함안한 거지요.
또 이런 맹세가 어떻게 법제화가 가능할 수 있었냐하면 이 맹세가 법제화 된 1942년은
1941년 말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인해 미국사회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거지요. 그래서 그 분위기를 타고 법제화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오래 갈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가톨릭에서는 전시후에도 계속 이것이 사라지지 않고 영구히 유지되길 바래서 로비를 한거지요.
왜냐하면, 형상을 섬기는 그들의 희한한 전통을 이 법으로 무마시킬 수가 있거든요.
또 프로테스탄트들을 동화시킬 수도 있지요.
쉽게 말하면 가톨릭의 형상숭배전통을 정당화하려고 한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이를 유지시킬려고 하는것은 가톨릭의 도구가 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미국에 이주해 온것은 명백히 종교의 자유를 찾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와서는 형상숭배전통을 옹호한다면 앞뒤가 맞질 않습니다.
명백히 이 국기에 대한 맹세의 전쟁후 유지는 가톨릭이 노린 것입니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under God'라는 용어가 법에 포함되게 한 로비조직은 침례교가 아니라 가톨릭입니다.
바로 1954년에 가톨릭의 요구에 의해 개정되며 생긴 단어가 'under God' 입니다.
그때 가톨릭의 컬럼버스의 기사단이라는 단체가 주축이 되어 사용하던 맹세문 내용에 'under God'가 있었거든요.
고의적으로 이 단체가 쓰던 맹세문 그대로 법에 구현하기 위해 가톨릭이 요구한겁니다.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프로테스탄트가 국기에 대한 맹세에 찬성하는 것이 잘하는 일입니까?
침착히 판단해 봅시다.
우리는 형상을 숭배할 수가 없습니다.
형상에 배례하고 형상에게 맹세할 수가 없습니다.
가톨릭이야, 성당안에 인형이 즐비하고 심지어 유골, 즉 사람해골과 뼈가 그득한 성당도 있지요.
그런 혐오스런 인형앞에서 고개숙여 기도하며 섬기는 것이 가톨릭의 미덕인양 선전되지 않습니까?
심지어 교황이 작은 인형을 세워놓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경배하기까지 하지요.
가톨릭의 이런 더러운 전통과 관습을 버리고 성경대로 살기위해 개혁한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프로테스탄트가 국기에게 배례,맹세하고 시체앞에서 고개숙이고,
죽은 사람 추모한답시고 고개숙여 기도하고 꽃들고 있는지 생각을 해 보십시오.
과연 하나님께서 잘한다고 하실일인지, 우상숭배라고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일인지
성경으로 판단해 보십시오.
<질문7. 부시대통령이 신사참배한것에 대한 반응을 미국의 신앙상태의 표현으로 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복음주의자가 미국 인구의 20-25퍼센트입니다.
이들이 부시 대통령을 기독교인다운 지도자이며, 반드시 지지해야한다고 지지에 앞장섰습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의 선전과 복음주의자들의 몰표로 당선된겁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부시 대통령은 실제로 선거에서 미국 보수기독교인, 소위 복음주의자들중의
무려 80퍼센트 가까운 지지를 받은 대통령 아닙니까?
엄연히 선거결과가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시 대통령이 우상숭배했을 때도,
교직자들이 그것을 우상숭배로 판단했다면
당연히 거기에 대한 코멘트가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의 신사참배에 대해 주류 교직자중 단 한명도 이의를 제기치 않은 것은
미국기독교가 성경적인 깨어있는 기독교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데교회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을 반기독교적인 인물이라며
부시 대통령을 적대시하고 공격하며 반대한 주류교직자 중에서도
부시 대통령의 신사참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이들에게 있어서는 부시의 신사참배가 반대의 좋은 껀수였을텐데도 말입니다.
미국 기독교는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에서 U턴하여 가톨릭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8. 부시대통령 한 사람의 행동때문에 미국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을 싸잡아서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말 실례가 아닙니까?>
답변8: 문제는 단순히 부시대통령의 신사참배 문제뿐 아니라,
교직자들의 그러한 침묵이 다른 모든 우상숭배 사안에 대해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잠자는 신앙상태를 가진 교직자들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우상숭배죄에 빠져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교직자가 귄위를 위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아서,
잘못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침묵하여 진리가 왜곡되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만드는 크나큰 직무유기를 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2: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현재 그들은 짐승이 양떼를 삼키고 있는데도 전혀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이샤야서 56:9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렇듯이 구약성경이래 교직자의 침묵은 항상 많은 사람들의 배도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이 상황을 어찌 더 두고보겠습니까?
오늘날 한국과 미국의 프로테스탄트들을 우상숭배에서 구해야 됩니다.
교직자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라해도 해야됩니다.
사도행전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 여세나 되었더라
<질문9.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아직 결론이 서지 않습니다>
답변9: 우상숭배란, 하나님 외의 대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형상'이나 '영적 존재'를 섬기면 무조건 우상숭배입니다.
다니엘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전제군주제 체제하에서
국가의 주권자인 왕(느부갓네살)을 상징하는 '형상'인 금신상과
오늘날 민주국가 체제 하에서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국가를 상징하는 '형상'인 국기가 뭐가 다릅니까?
그것에 일제히 배례하고, 동시에 풍악이 울려퍼지는 것까지도 똑같지요.
그러니 느부갓네살 때나 오늘날이나 모두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제가 어거지를 쓰는 걸까요,아니면
금신상은 'GOLD' 요, 국기는 'COTTON' 이니 다르다고 핑계대는 자가 어거지를 쓰는 거겠습니까?
그러니,
금신상일때는 절하면 안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는 해도 괜찮다고 교직자가 가르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인들에게 조삼모사하는 격이지요.
마태복음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가복음 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당시 교직자들이 그들의 가르침인 유전(전통)을 합리화 하기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의 예로써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린 것을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만,
오늘날의 교직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떤 계명을 저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째 계명, 즉 가장 중요한 계명, 계명중의 계명을 어기고 있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우리의 하나님은 유일하시므로
절대적으로 우상숭배를 겸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신명기 5: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야고보서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고린도후서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린도전서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질문10. 묵념하는 것이 왜 우상숭배인지요?>
답변10: '머리숙임',즉 '인사'는 역사불문하고 어디서든지 엄연히 섬김의 행위로써 행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의 대상에게 머리숙이면 섬김이고 우상숭배입니다.
그것을 묵념이라고 이름한다든지, 또는 다른 명칭으로 부르며 핑계 댄다고 해서
그 종교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어떤 대상 앞에서나, 또는 어떤 대상의 존재를 가정하고 행하는 머리숙임은 그 대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즉, 머리숙임은 섬김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창세기 24:26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출애굽기 4: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출애굽기 12:27
여호와께서~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즉, 이와같이 머리숙임 즉,목례하는 것은 대상을 섬김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보다 더 확실한 섬김의 의미는 무릎까지 꿇고 절하는 것이지요.
즉, 목례나 절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지 마찬가지입니다. 둘다 섬김입니다.
유골이나 시체나 영령(영혼)에 대해서 고개숙여 목례하거나 절하는 섬김을 행하는 것은
역사상 모든 지역에서 행해져온 우상숭배의 형태입니다.
만약 기독교인이 유골이나 시체 앞에서 고개숙이거나 영령에 대해서 고개숙이면서
이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정말 하나님께서 잘하는 것으로 인정해 주신다면,
제가 주기철 목사 예를 들듯이,
주기철 목사도 그냥 고개숙여버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다고 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그렇듯 대상에 대한 명백한 종교적 시인인 고개숙임을 하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시고 옳다고 하시겠습니까?
또 고개숙이는 것(목례)는 안하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다고 핑계를 댄다 해도,
기도는 그 때가 아닌 다른 때나, 그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할 일 아닙니까?
하필, 그 때나 그 장소에서 고개숙이거나 기도하면서 그런 논리로 자신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바보취급 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가중처벌되어야 마땅합니다.
베드로후서 2:10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한 고개숙임과 기도를 안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성도의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중에 시체앞에서 고개숙이고 기도하고, 또 심지어는
예전에 죽었던 사람까지 추모한답시고 고개숙이고 꽃 한송이씩 손에들고 있는 꼴을 보면,
가톨릭의 '유골 섬김'과'죽은 성인 섬김'을 비판하기가 낯부끄러울 지경입니다.
그들과 다를게 뭡니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어차피 그렇듯 배교를 행할 것 같았으면, 대체 종교개혁을 왜 했습니까?
가톨릭도 예수님이라고 만든 인형 앞이나 그림 앞에서 기도하면서
인형이나 그림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합리화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러한 섬김이 결국은 예수님께 돌아가므로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우깁니다.
(주: 소위,'공경과 흠숭' 이라는 가톨릭의 궤변적 논리를 말합니다.
가톨릭 교리에는 '10계명'중에서 '형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 는 두번째 계명이 생략되었고,
그래서 10계명에서 한 계명이 모자라게 되자, 마지막 계명을 둘로 나눠
열가지 계명으로 짜 맞추어 놓았습니다.)
<질문11.섬김의 의미를 갖는 형식에는 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답변11:섬김의 형식의 대표적인 것들은
1.배례, 2.기도, 3.분향, 4.제물을 바치는 것, 5.제물을 먹는 것, 등입니다.
이러한 형식들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역사이래 인류가 섬김의 표시로써 행해온 행동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형식을 행하면, 명백히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섬김의 형식들 중에서
예외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행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배례'입니다.(인사 등)
일반적인 의미로 살아있는 사람간에 배례가 행해질 때는
실제 살아있는 인간간의 일반적 유대를 의미하므로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섬김의 형식들 중에서
배례를 제외한 다른 형식(기도,분향 등)은 예외없이 우상숭배입니다.
<질문12.구약성경에는 천사에게 배례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답변12: 천사에게 배례해서는 안됩니다.
신약시대에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거듭나서 진정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를 심판하는 지위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므로 천사까지 심판합니다
고린도전서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judge angels)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상속자인 우리를 섬기라고 천사를 보내신 것이지,
우리더러 천사를 숭배하라고 천사를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그러므로 천사를 섬기면 안됩니다.
천사를 섬기지 말것을 심지어 천사가 직접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10
내가 그(천사)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천사)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요한계시록 22:8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하지, 천사를 섬기면 안됩니다.
만약 누가 천사섬김을 허용하는 교리를 주장한다면,
그런 교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다시 잃게 만드는 이단교리입니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천사를 섬기지 말것을 분명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질문13. 유일신 사상은 이슬람스러운 사상이 아닙니까?>
답변13: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명제는 원래부터 성경의 것이지,
이슬람 코란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것은
성경의 율법서에서도 첫째가는 명제였고 성경의 선지서에서도 첫째가는 명제였습니다.
율법서는 BC 14세기 이전에 기록되었고 선지서는 BC 7세기 이전부터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의 코란은 빨라도 AD 7세기부터나 기록된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무려 2천년이 넘게 차이가 납니다.
어느 것이 먼저 기록되었을지는 자명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개념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서중에서 '신명기'와, 선지서중에서 '이사야서'에서
몇가지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신명기 4:35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32: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명기 4:39
오늘날 상천 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이사야 44:6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이사야 44:8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이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알지 못하노라
이처럼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것은
율법서에서든, 이후 선지서에서든 항상 믿음의 기준 그자체였으며,
그러므로 우상숭배금지는 믿는 자들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의무였습니다.
우리의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분명히 선포하고 계시듯이,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것은 신약시대에서도 첫째가는 명제입니다.
마가복음 12:28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아래는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믿는 것이 구원의 근본이라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사도들도 하나님은 유일하시다고 하였습니다.
딤전 1:17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에베소서 4: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야고보서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유다서 1:25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렇듯이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것은 신약에서 전제되고 있는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므로 우상을 겸해서 섬기면 안됩니다.
우상을 섬기면 안된다는 것에 관한 내용은 신약,구약에서 일일이 예를 들지는 않겠습니다.
하루종일 읽어야 될 것입니다.
이슬람의 유일신개념은 AD 7세기이후에 이슬람이 성경에서 착안하여 만든것입니다.
즉, 코란이 성경을 흉내낸 것이지,성경이 코란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데 오늘날 가톨릭은
'하나님은 유일하시다'는 명제를 대하면,
그런 사상은 이슬람사상처럼 느껴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너무나 우상종교화되어 성경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성경에서 첫째가는 명제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이교적인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가톨릭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닌, 우상숭배전통에 근거한 우상종교입니다.
<질문14. 가톨릭을 우상종교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변14: 가톨릭을 우상숭배 종교라고 부른 이유는,
첫째로 가톨릭은 하나님과 예수님이라며 형상(그림, 조각상)들을 제작하여
그 형상들에게 섬김의 형식들을 행합니다.
둘째로 가톨릭은 마리아와 성인들과 천사들에게 섬김의 형식들을 행합니다.
세째로 가톨릭은 마리아와 성인들과 천사들을 형상(그림,조각상)으로까지 제작하여
그것들에게 섬김의 형식들을 행합니다.
네째로 가톨릭은 그외 각종 형상들인
시체,해골,뼈,유품,십자가,빵 등에게도 섬김의 형식들을 행합니다.
이렇듯이 가톨릭은 온갖 우상숭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일례로 현재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만도 400개의 우상과 40개의 제대(祭臺)가 있습니다.
가톨릭은 우상종교라고 불림이 마땅합니다.
예레미야 50:38
이는 그 땅이 조각한 신상의 땅이요
그들은 우상에 미쳤음이니라
<질문 15. 가톨릭이 '빵'을 어떻게 섬긴다는 것입니까?>
답변15:가톨릭은 미사에 쓰이는 미사용 빵이 미사도중에 진짜 예수님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가 빵을 들고,"이것은 나의 몸이다"라는 말을 하는 그 순간,
예수님께서 실제 빵에 강림하셔서 그 빵 자체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 빵은 전체적이고 완전한, 진짜 예수님이며 하나님으로서의 위격까지 지녔다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이므로 섬김의 대상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적으로볼때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에게 절하고 섬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톨릭 미사에서 예수님이라고 선포된 그 빵은 진짜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위한 또하나의 형상일 뿐입니다.
만약 누가, 미사에서 신부에의해 예수님이라고 선언된 빵이 진짜 예수님이라는데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 하나님만이 섬김의 대상이 되심을 부인하고,
형상인 빵을 자신의 섬김을 받을 지위를 가진 존재로 인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자체로 우상숭배입니다.
가톨릭은 다른 수많은 형상들을 섬기는 것이 모자라서 빵까지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는 미사에서 빵을 예수님이라고 선포한 후, 그 빵을 잘라서 일부는 빵통에 보관합니다.
이렇듯 빵을 잘라도, 각 빵은 모두 전체적이고도 완전한 진짜 예수님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미사에서 신부가 빵을 나눠줄때 가톨릭 교도들은 빵에게 무릎 꿇어 경배하거나 빵에게 목례하여 경배합니다.
그리고 그 빵을 손으로 받지 않고, 혀로 받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예외적으로 혀가 아닌 손으로 받을 경우에는
반드시 해당 성당은 소위 "사도좌"에게 이를 사전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듯이 매 미사마다 빵이 섬김을 받을 지위를 갖는 진짜 예수님자체라고 선포되고,
빵에게 경배하고 혀로 받는 일들이 매번 벌어집니다.
또 평시에 '성체조배'라 하여 빵에게 기도도 합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빵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사야 44:17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섬김을 행하는 자는 그 섬김을 받는 자를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처럼 진리를 알아가게 되고,
우상을 섬기면 우상처럼 어리석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0: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는 나무뿐이라
시편 115:8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가톨릭은 빵에게 경배하면서도,
이런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못느낄만큼
한없이 어리석어져 있습니다.(빵을 닮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상을 섬기지말라'는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이방인들의 우상숭배하는 관습(전통)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0:3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만을 섬김으로 구원을 받읍시다.
이사야 45: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영세에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질문 16> 우상숭배를 하면 안된다는 모세가 받은 계명은 모든 대상에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닐텐데요?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되어있지만 놋뱀을 만드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것은,
신상이 아닌 형상을 섬기는 것은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답변 16:
그런 논리는 가톨릭이 자신들의 우상숭배를 합리화하기위해
대상이나 정도에 따라 우상숭배가 아니라며 곧잘 대는 핑계이지요.
성경을 잘 모르면, 속기 쉽습니다.
그 놋뱀도 섬기면, '우상숭배죄'라는 것은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입증됩니다.
아래의 성경 구절은 히스기야가 우상숭배를 타파한 것에 대한 부분입니다.
열왕기하 18: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놋 조각)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는 분명히 우상숭배로 보고 부순것입니다.
히스기야의 이런 판단은 바로 다음구절인 열왕기하 18장5절에서 보듯이
분명히 잘한 행동으로 성경에서 평가 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이렇듯, 형상을 섬기면 예외없이 우상숭배라는 것이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아무리 가톨릭에서 자신들의 우상숭배를 정당화하려 해도,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은 자신들의 우상숭배를 정당화 하려고 심지어
자신들의 전통이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다고 선언했습니다.
(1445년 트렌트 회의에서 전통이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다고 선언)
자신들의 전통,즉 우상숭배를 해온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죄악, 곧 자신들의 교권보존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끌었고,
또 지금도 이끌고 있는 그 죄악을 덮으려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조직이 임의로 만든 전통을 자신의 구원의 잣대로 삼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그것이 맞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의 가르침은 무오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perfect)사람이라
이렇듯이 다른 사람도아닌, 사도시대의 대표인 야고보사도도
'선생인 우리들은 다 말에 실수가 있다'고 털어놓지 않습니까?
그러므로,언젠가는 썩고 삭아질 인간의 교훈과 전통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오로지 변치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다른 무엇보다 권위있고 구원의 기준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베드로전서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질문17>.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고, 또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우상숭배를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사랑일까요?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하지 않습니까?
답변17: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구원계약자체를 파기하는 중죄이며,
그 결과, 구원에서 제외되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러니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일입니까?
어떤 사람은 저에게
"골로새서에 나와있듯이 '탐심'도, 말하자면 우상숭배아니냐?"
"우상숭배가 뭐 대단한 죄냐?" 라는 논리로 물으셨습니다만,
그러면 제가 묻겠습니다.
야고보서에 나와있듯이 형제를 차별하는 것은 살인과 같습니다.
그러면 위의 논리처럼
"야고보서에 나와있듯이 '형제차별'도 말하자면 살인 아니냐?"
"살인이 뭐 대단한 죄냐?" 라는 논리를 편다면 그것이 옳습니까?
이 '말하자면 살인'과 '진짜 살인'은 엄연히 죄과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말하자면 우상숭배'와 '진짜 우상숭배'는 엄연히 죄과가 다릅니다.
우상숭배는 구원에서 제외되어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이 깨우치도록 논쟁해야 합니다.
행 17: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우상숭배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자기 눈앞에서 멸망의 구덩이로 빠져들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치는 것입니다.
눅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방이 죽어갈때 도와줘서 살게해주고,
상대방이 우상숭배할때 그것에서 돌이키게해줘서 멸망에서 구해내는 것입니다.
만약, 우상숭배하는 사람을 보고도 잘못을 지적하면 서운해 할거라며 그냥 넘어간다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정결례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냥 지나치는 제사장,레위인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는 그들처럼 거짓사랑을 행하는자가 되지말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행합시다.
우상숭배하는 사람을 깨우쳐서 그를 죽음에서 건져냅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운운하며 우상숭배하는 자를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것은
미운자식 떡하나 더주는 거짓사랑일 뿐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심판에 처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상숭배하는자를 구하는 것이 마땅치 않습니까?
누가복음 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마태복음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야고보서 5: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질문18: 가톨릭이 10계명의 제 2계명을 생략한 것은 그 두개의 계명이 모두 우상숭배에 관계되므로
내용상 유사하여 생략한 것인데요?>
답변18:
제 1계명과 제 2계명이 모두 우상숭배죄를 규정하므로 제 2계명을 생략해야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계명이 명백히 열개의 계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 4:13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그러므로 "형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구절이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열가지의 계명중의 하나의 독립된 계명이었음이 명백히 입증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열개의 계명을 주셨는데, 가톨릭이 자기 임의로 한개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생략한 제 2계명이 가톨릭의 교리에 걸림이 되는 계명,
즉, 형상을 만들고 섬기는 것을 금하는 계명이란 점은
가톨릭이 제 2계명을 사심을 가지고 생략했음을 입증합니다.
만약 가톨릭의 주장대로 가톨릭이 제 2 계명을 생략하여 아홉개의 계명으로 줄인 것이 떳떳하다면,
아홉개의 계명을 그대로 놓아두었어야 말이 됩니다.
그러나 가톨릭이 구차하게 마지막 계명을 둘로 나눠 다시 열개의 계명이 되도록 만들어 구색을 맞춘것은
제 2계명을 생략한 행동이 떳떳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또한 십계명중에 제 2계명이 누락된 것을 일반 가톨릭 교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 평신도들은 성경을 전혀 안보기 때문에 누군가 이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열개의 계명중에 한개가 생략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평생을 지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가톨릭 교도들은 신부들이 제 2계명을 생략시키고 마지막 계명을 둘로 나눠놓았다는
그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죄의식없이 가톨릭의 형상숭배전통에 순종하여 형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계명은 "이웃의 집, 아내, 남종, 여종, 소, 나귀, 곧 이웃의 소유를 탐하지 말라"는 것인데,
가톨릭은 이것을 자기네 임의로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와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로 분할하고는
각각 아홉번째 계명과 열번째 계명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지극히 인위적인 기준에 의한 특정계명의 분할도 문제이거니와
더구나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것을 제 9계명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와 명백히 중복되게 되었습니다.
제 1,2 계명이 중복되어서 제 2계명을 생략했다면서
제 7계명과 중복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계명을 둘로 나눠놓은 것은
어떤 설명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톨릭이 우상숭배를 계속하기 위해 제 2계명을 생략시켰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바보가 아닌 담에야 가톨릭의 변명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질문19: 우리는 재세례파가 아닌데 왜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를 거부해야 됩니까?>
답변19: "우리는 재세례파가 아니므로 형상을 섬겨도 된다"고 주장하는 개혁파가 있다면,
그는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세례파가 거부한 것은 "형상숭배"가 아니라, 단순히 "선서"입니다.
근대사회이래 재세례파가 특정 정권과 마찰을 빚었던 것은
특정 정권이 공적인 약속,즉 선서를 요구하였을때 재세례파가 거부하였다는 점 때문이지,
재세례파가 형상을 섬기는 것을 거부한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근대사회이래 선서를 요구한 정권은 있었어도,
형상을 섬길 것을 요구한 정권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20세기에 국기라는 형상에 대해서 맹세할 것을 요구한 국가는 오로지 한국과 미국뿐입니다.
또한 재세례파가 모든 선서를 거부한 것도 일리가 없는 행동이 아닙니다.
선서의 내용이 기독교의 믿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면 당연히 거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선서를 거부하는 재세례파를 무조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견해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법적인 관점에서도 선서의 요구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봅니다.
대다수 국가에서 준법선서조차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국민의례를 무조건 거부해야 되는 것은,
무엇보다 한국 국민의례가 형상을 섬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형상을 섬길것이 요구된다면 재세례파든, 개혁파든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거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개혁파는 재세례파와는 다르다"라는 논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질문20: 사전에는 섬김의 대상을 신으로 여기야 "우상숭배"라고 나와있는데요?>
답변20:
사회에 존재하는 절대 다수의 종교는 형상이나 영을 섬기며,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라고 여기지 않으므로 형상이나 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전은 이런 사회의 통념에 근거한 것이므로
"섬김의 대상을 진짜 신으로 여겨야 우상숭배다"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대상을 신으로 여기지 않으면 섬겨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어떤 형상에게든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전의 개념 정의를 믿음의 기준으로 삼을게 아니라, 성경을 기준으로 삼아야 됩니다.
출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어떤 형상에게든 섬김을 행하면 이미 그 형상을 신으로 대한 것이며 우상숭배입니다.
심지어 곤충을 섬겨도 우상숭배입니다.
겔 8: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이처럼 성경에 의하면 곤충을 섬겨도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또한 곤충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형상이든 형상을 섬기면 무조건 우상숭배입니다.
신명기 4:16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
이렇듯 어떤 형상이든 우상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성경에서 규정하는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대상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섬길때만 우상숭배인 것이 아니라,
형상을 섬기면 무조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우상숭배금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기로 계약을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은 자가 지켜야 할 가장 큰 의무가 "우상숭배금지"라는 것은
구약시대의 십계명에서도 그러했고, 신약시대에도 역시 그러합니다.
막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계약은 곧 약속입니다. 약속은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 계약의 보증으로 동물의 생명, 곧 동물의 피를 걸었습니다.
출 24: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모세가 짐승의 피를 뿌린 것은 폼으로 뿌린 것이 아닙니다. 계약의 보증물로써 뿌린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신약시대에 무려 예수님이라는 재물의 피를 걸고 하나님과 계약했습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보증물로 걸고 하나님에 대해 계약을 체결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계약을 맺은 자는 계약에서 요구되는 의무를 준수해야만 됩니다.
세상에서 체결되는 계약에서도 약속을 못지키면 계약금, 곧 계약의 보증물로 갚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체결한 구원계약을 못지키면
계약의 보증이었던 예수님의 피흘림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에서 제외되어 영원한 심판에 처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 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으로 우상숭배를 거부해야하며 성경에서 규정하는 우상숭배의 개념은
대상을 신으로 여기든 안여기든 형상을 섬기는 자체를 의미함을 명심해야 됩니다.
즉, 성경에 의하면 형상을 섬기면 무조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숭배하면 멸망받는다는 것을
결혼계약을 위반하면 이혼된다는 이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어떤 여자가 결혼계약을 했다면
이후 외도하지 말아야 된다는 의무가 첫째가는 의무이며 반드시 이를 지켜야 됩니다.
만약 그 여자가 외간 남자와 간음했다면, 그 여자가 외간 남자를 남편으로 여겼든 안여겼든간에
간음한 그 자체로 무조건 이혼사유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기로 했으니
이후에 우리가 다른 형상을 섬긴다면 그 형상을 신으로 여겼든 안여겼든간에
섬긴 그 자체로 무조건 구원계약이 파기될 사유가 되는 것입니다.
형상이나 영을 섬기면 무조건 우상숭배라는 것이 성경이 규정하는 우상숭배죄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우상숭배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전에 규정된 우상숭배를 행치 않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우상숭배를 행치 않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저 날에 하나님께서는 세상사람들이 가진 사전을 기준으로 우상숭배죄를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근거로 우상숭배죄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질문21: 형상이나 영에게 예를 표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답변21: "예를 표한다","예를 갖춘다"는 논리는 우상숭배를 정당화하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형상이나 영을 섬기는 것을 예를 표한다고 정당화하든, 예를 갖춘다고 정당화하든,
형상이나 영을 섬긴 그 자체로 무조건 우상숭배입니다.
예를 표한다, 예를 갖춘다는 것은 가톨릭의 논리인데, 이는 라틴어로 "둘리아"라는 것으로써,
"숭배"가 아니라 "공경"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숭배"(흠숭)를 뜻하는 라틴어는 "라트리아" 입니다.
가톨릭의 논리에서는 "라트리아"로써 대상을 섬기는 것은 대상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섬기는 것이지만,
"둘리아"로써 대상을 섬기는 것은 섬김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고 예만 갖추는 것입니다.
가톨릭은 "형상에게 둘리아를 행하는 것은 대상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섬기는 것이 아니므로
우상숭배죄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죽은 사람에게 제사지내는 것도
"이는 예만 갖추는 것이니 둘리아이므로 괜찮다"고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톨릭의 교리에 의하면 어떤 형상을 신으로 대하여 섬기지만 않으면 "둘리아"이므로 괜찮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마리아,성인,천사,십자가,해골에게까지 절을 하고 분향하고 기도하면서도
"이런 섬김은 둘리아이므로 라트리아는 아니다.
나는 평소에 라트리아는 하나님께 드리고 있으므로 괜찮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 궤변적 논리에 의하면 가톨릭이 섬기지 못할 형상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형상이든 섬기고는 "이것은 둘리아이며 라트리아는 하나님께 드린다" 라고
말해버리기만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궤변은 어디서 본 것이 아닙니까?
막 7: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이처럼 가톨릭의 논리는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뒤엎는 유대인의 궤변을 연상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니 마땅히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할 일이거늘,
가톨릭은 "나는 라트리아는 하나님께 드린다"는 궤변적 논리로써 우상숭배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트리아와 둘리아라는 논리가 가톨릭을 오늘날같은 우상종교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7세기의 동로마 황제인 레오3세가 벌인 우상숭배타파운동을 그 논리로 방해했으며,
그 이후 천년이 넘게 그 논리로써 사람들에게 우상숭배해도 된다고 부추겼습니다.
오늘날도 가톨릭은 죽은 사람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권장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신약성경이 예언한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자", 바로 그 적그리스도체제인 것입니다.
행 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만약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의 패역한 논리를 비판하기는 커녕, 오히려 옹호하여
"형상이나 영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고 예만 표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말한다면
그는 다시 적그리스도 체제인 가톨릭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씼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질문22: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을 적그리스도 체제로 여기는 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역사적 견해는 아니지 않습니까?
프로테스탄트는 종교개혁 이후 단지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만을 비판해왔지 않습니까?>
답변22:
면죄부 판매에 관한 비판은 종교개혁의 단초가 된 사안일뿐, 종교개혁의 본질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의 본질은 가톨릭을 고치자는 정도가 아니라, 가톨릭을 전면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면죄부 문제로 국한시키려고 여론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계략에 절대로 속아서는 안됩니다.
마틴 루터가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을 전면 부정하였다는 것은,
트렌트 회의에서 교황 줄리어스 3세가 마틴 루터의 교리를 평가한 내용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마틴 루터의 모든 실수는 한마디로 '칭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칭의로 말미암아 그는
성례전, 사제들의 권위, 연옥, 미사의 희생, 죄에서 용서함을 받는 모든 조치의 효력에 대해
단호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와 대조적으로 catholic 교회의 몸을 세우려 하는 자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단 교리를 전복시켜야만 한다."
[Govanni del Monte, soon to be Pope Julius Ⅲ, at the Council of Trent, 1545-64]
위에서 보듯이 마틴 루터는 결국 가톨릭의 교리와 제도자체를 전면 부정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은 가톨릭을 단지 비판할 대상정도가 아니라
가톨릭을 아예 사탄의 체제, 즉 적그리스도 체제라고 여겼습니다.
가톨릭을 적그리스도체제로 보는 관점이
종교개혁이후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의 공통된 관점이었다는 증거는
당시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의 적그리스도에 관련된 신학저술들에서 충분히 입증되며
심지어 당시의 일반서적들, 한 예로 1589년에 출간된 영어사전에조차
교황이란 단어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교황 : 사악한 집단의 수장으로써 마귀의 최고 대리자
이처럼 종교개혁 당시 모든 프로테스탄트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보았고
따라서, 그 적그리스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종교개혁에 가담했던 것입니다.
교황과 가톨릭에 대한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의 교직자들의 견해를 봅시다.
16세기 이후 제일 먼저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의 견해를 보면,
그는 교황을 두고 "귀신들이 충만한 자이며 하나님의 원수이며 적그리스도이다"라고 평가했으며,
가톨릭을 두고 "모든 귀신들이 전력을 다해 이룰수 있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루터가 가톨릭을 "귀신들이 전력을 다해 이루어 낸 체제"라고 표현하듯이,
루터가 본 가톨릭의 문제점은 단지 면죄부판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아예 가톨릭의 체제 자체를 전면 부정하였습니다.
루터는 "이 악마적인 교황 제도는 땅 위의 최종적 불행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개혁가들이 가톨릭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톨릭이 우상숭배체제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루터 이후 개혁교회를 시작한 칼빈의 견해를 보면 명백합니다.
칼빈은 교황을 두고 "다니엘과 바울이 예언한 바로 그 적그리스도요
그 악하고 가증한 왕국의 지도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니엘의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은 적그리스도가 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 곧 우상을 세운다는 것이었고,
바울의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은 적그리스도가 속이는 영들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며
심지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칭하고 숭배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가톨릭의 우상숭배적 요소를 지적한 것입니다.
이는 칼빈이 가톨릭체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데서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여로보암왕 때보다 더 불순한 교리와 더 큰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체제다"
가톨릭의 또다른 문제점은 교황을 지상교회의 머리라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는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로부터 첫 번째로 나셨으니
이는 그가 만물 안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가톨릭이 교황을 지상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교황을 감히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실제 가톨릭은 교황을 "지상교회의 머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자"(Christ's Vicar)라고 부르는데,
이는 "오늘날도 지상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시는데, 그 그리스도가 바로 교황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아래는 교황 비오 10세가 직접 한 말입니다.
"교황은 교황이라는 육체의 베일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예수그리스도 자신이다"
오늘날까지도 "지상 교회의 머리" 와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명칭은
가톨릭 교회법상의 공식적인 교황의 명칭입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의 선언서에서 여기에 대한 비판들을 보면,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을 전면 부정하였음이 명백히 입증됩니다.
장로교회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6 항 (1646년)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교회의 다른 머리가 있을 수 없다.
로마 교황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이는 자로서
적그리스도요, 죄의 사람이고, 멸망의 아들이다."
침례교회 - 침례교회 신앙고백 26장 4항 (1688년)
"지상에 교회의 수령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죄의 사람, 혹은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로,
장차 그는 자기를 하나님이라 칭하며 예수 그리스도께 대적하게 될 것인데,
그는 재림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광채로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다."
회중교회 - 사보이 선언서 26장 4,5항(1658년)
"로마 교황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적할 죄의 사람, 혹은 불법의 아들인 적그리스도로
자기를 하나님이라 부르면서 지상의 교회에서 자기를 높이게 될 것이다."
이렇듯 명백한 반대는 프로테스탄트들이나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이
종교개혁이래 가톨릭이라는 체제 자체를 전면부정한 것을 입증합니다.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들의 저러한 역사적 선언들을 은폐한 채,
"프로테스탄트란,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만을 반대하는 자들이다"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가톨릭을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를 가리켜
"프로테스탄트의 교리를 잘 몰라서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다"라고 매도합니다.
가톨릭에 의한 역사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은 위의 신앙선언들 외에도
스위스 신앙고백서 17조, 벨기에 신앙고백서 36조, 보헤미야 신앙고백서 3조,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등에서 모두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이래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간주하는 것이 프로테스탄트의 공통된 관점이었음은
자타가 공인해 온 역사적 사실입니다.
"교황권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 하는 것은 종교 개혁의 중심을 이루는 사상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자들에게 교황권을 대항할 수 있게 하였던 큰 원동력이 되었다. "
- Encyclopedia Brittanica, 1962 edition, Volume 2, page 61 -
성경에서 적그리스도란, 멸망의 아들이요 마귀의 하수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여겼다는 것은
가톨릭에 대해 단순한 비판을 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절대적인 반대를 하였음을 입증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가톨릭의 테러로 죽어갔던 것입니다.
가톨릭은 각 국가의 정권과 결탁하여 수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을 동물을 사냥하듯 죽였습니다.
그리고 교황을 비롯한 가톨릭 성직자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한 것을 환호했습니다.
한 예로,
1572년 가톨릭이 프랑스에서 국왕의 권력을 이용해 프랑스 내의 10만명의 프로테스탄트를 학살했을때,
교황청은 축포를 터뜨리고 축제를 벌였고 교황은 프로테스탄트의 살육을 기념하는 기념주화까지 발행했습니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가톨릭에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 교인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돈으로 죄를 사해주는 것"(대사)이 교리로 규정되어 있으며,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온갖 우상숭배들, 특히 빵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절하고 있으며,
교황을 지상교회의 머리이자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지상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바티칸은 온 세상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입지를 약화시키기위한 테러를 행하고 있습니다.
단지 테러의 방식이 직접적인 테러에서 다른 종교를 부추겨 프로테스탄트를 테러하게 하거나
정권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여 프로테스탄트에게 인격적인 테러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 테러의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들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프로테스탄트로 여기면서도 가톨릭에 타협하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가 프로테스탄트 역사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프로테스탄트인 것입니다.
<질문23: 프로테스탄트가 왜 남의 종교인 가톨릭의 교리를 간섭합니까?
자기 눈의 들보나 뽑아야 될 것 아닙니까?>
답변23: 가톨릭은 항상 "우리가 바로 기독교의 본류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의 교리를 기독교 교리의 표준으로 여기게 될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가톨릭은 자기들의 교리가 표준이라고 선전하면서도 자기들이 빵에게 절하는 것은 악착같이 은폐합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교리를 폭로하여 가톨릭이 어떤 교리를 가진 집단인지를 밝히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은 우상종교일뿐 아니라, 성경에서 예언된 바로 그 적그리스도 체제입니다.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톨릭이 바로 적그리스도체제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자기 종교의 경전에 의해 사탄의 화신으로 지목된 체제가 그 종교의 본류를 자처한다면
이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톨릭의 교리를 잘 모르므로 이런 모순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의 교리를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강대상에 ihs 라는 가톨릭의 태양신 명칭을 걸어놓은 후,
그 사진을 찍어서 프로테스탄트가 ihs 라는 마크를 써왔다고 거짓선전하는 글을 유포하는 자들이 있는등
가톨릭의 우상숭배행태를 프로테스탄트에게 뒤집어 씌울려고 혈안이 된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기극에 맞서서 가톨릭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질문24. 한국 기독교가 국민의례를 우상숭배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습니까?>
답변: 1949년 경기도에서 국민의례를 거부한 학생들이 40명 넘게 퇴학당하고 목사가 구속되면서
프로테스탄트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전국적으로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또한 1972년 국기에 대한 맹세 제도가 만들어 졌을때도,
장로교 총회는 이를 국기를 인격체로 섬기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우상숭배라고 정부에 시정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이후 이런 국민의례 반대 분위기가 유야무야되면서
오늘날은 괜찮다고 보는 것이 대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법제정 초기에 모두 반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상숭배이냐 아니냐를 교리적으로 따지기에 앞서서,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법을 가진 나라는 20세기에 한국과 미국뿐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즉, 온 세상이 안하는 것을 미국과 한국만이 해온 것입니다.
이렇듯 20세기에 세계에서 이런 법을 가진 나라가 드물고,
더구나 기독교 교리적으로 우상숭배에 해당함에도 억지로 정당화하여 따르고 있는 것은
한국 프로테스탄트가 배도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일장기 배례와 순국선열에 대한 묵도를 우상숭배로 여겼는데도,
오늘날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그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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