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녀들의 어미/가톨릭의 하늘황후마리아

마리아는 우리 죄를 사했다?

생명얻는 회개 2015. 9. 20. 15:14

마리아는 우리 죄를 사했다?

가톨릭은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인류를 구원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라고 부릅니다.
가톨릭이 마리아를 "공속자"라고 부르는 것은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공속자라는 명칭이 바로 이 공동 구속자의 준말입니다.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중세시대에도 행해지던 가톨릭의 오래된 전통인데,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인류를 구원하는 임무를 담당했다는 것에 대해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의 헌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영혼들의 초자연적 생명을 회복시키시고자 온전히 독특한 방법으로 구세주의 활동에 협력하셨다": 교의 헌장 61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신다. ; 교의 헌장 62

즉,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마리아는 살아서는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했을뿐 아니라,
죽은 이후에 저세상에 가서도 이세상 사람들이 구원의 은혜를 받게하는 구원임무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견해에 의하면 마리아를 공속자로 불러온 가톨릭의 전통은 옳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교부들이 마리아가 순전히 피동적으로 하느님께 이용당하신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의 헌장 56

이처럼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가 의지를 갖고 예수님과 동반하며 인류 구원에 협력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를 공속자로 보고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의 헌장에 관한 가톨릭 서적의 평가를 보십시오.

"공의회는 마리아가 동정잉태의 시간으로부터 그 아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구원사업 안에서 아들과 함께 공속자이었음을 개괄한다" :『은총의 침묵속에서의 마리아』

그러므로 가톨릭이 마리아를 오늘날에도 공속자로 여기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인데,
가톨릭은 이것에 대해서 변명하기를 "공속자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미 공속자뿐 아니라 성령이 가질 명칭까지도 마리아에게 붙였습니다.

"교회에서는 복되신 동정녀를 변호자, 보조자, 협조자, 중재자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교의 헌장 62

이처럼 가톨릭은 성령이 가질 명칭들을 마리아에게도 돌려온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만 가질 명칭인 구속자를 마리아에게도 돌려 공속자로 불러온 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공속자로 선포한 적은 없으므로 잘못이 아니다"라고 발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가톨릭이 성령이 가질 명칭들을 마리아에게 돌려놓고도
"성령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잘 알아듣기 바란다"고 둘러대는 것과 같습니다.

마리아가 공속자라는 명칭을 가진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든지 안했든지 간에,
이미 가톨릭 교리는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 구원임무를 행했으며 지금도 행하고 있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공식명칭이 공속자냐 아니냐는 가톨릭의 핑계에 불과할뿐이므로 신경쓰지 말고
과연 마리아가 가톨릭의 교리대로 예수님의 구속사에 같이 동참하고 협력한자인지, 그것을 따져봅시다.

공관복음서로 불리는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마리아가 등장하는 부분은 단 한곳뿐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사역중이신 중에
마리아가 가족과 찾아와서 예수님을 부른 일입니다.

마태복음 12: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하니

마가복음 3:31
때에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누가복음 8:19
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마태,마가,누가복음의 이 구절들은 모두 같은 한 상황을 나타내는데,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중에 마리아와 가족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부른 상황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이 부분으로 보건대 마리아가 예수님을 도운 훌륭한 일을 했다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못믿고, 예수님의 일을 그르치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이때 마리아와 가족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3: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즉, 예수님을 아예 미쳤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미친 행동을 그치게 하려고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동생들의 이러한 방문에 관심도 안두셨고, 그들이 불러도 대답도 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동생들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시니,
오히려 예수님을 둘러 앉은 무리가 왜그러시냐고 예수님께 물을 정도였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모멸찬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2: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3: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누가복음 8: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혈연지간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명백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가톨릭은 마리아를 신적 모성을 지닌 특별한 자라고 부르고,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배례하고 분향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마리아 그림과 조각상에게까지 기도하고 배례하고 분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톨릭이 하나님외의 존재를 섬기는 것은 바로 귀신을 섬기는 의미입니다.

고전 10: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정말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았다면, 우상숭배죄를 다시는 지어서는 안됩니다.

요 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가톨릭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마리아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어 귀신을 떠난 후에, 다시 돌이켜서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므로,
아래의 경고문처럼, 마치 병이 도지듯이 더 큰 귀신씌임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12: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즉, 예수님을 믿는다고하면서 마리아를 섬기는 것은 차라리 안믿는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 일이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마리아가 등장하는 내용의 전부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다른상황에 관한 내용이 약간 나오는데,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한꺼번에 예수님에게 나타나지 않고,
예수님에게 각각 한번씩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실때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가 동시에 나옵니다.
이 두 상황이 요한복음에서 마리아가 나오는 전부입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말을 거는 상황부터 봅시다.

요한복음 2: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다음은 형제들이 예수님께 말을 거는 상황을 봅시다.

요한복음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위의 상황들에서 마리아와 동생들의 말을 표면적으로는 들어주셨습니다.
즉, 마리아의 요청대로 포도주를 주셨고,
동생들의 요청대로 초막절에 유대로 올라가셨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이를 근거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예수님께 요구한 마리아의 요구가 성취되었으므로
마리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구절이며,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있음을 증명하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부탁할 일이 있으면 마리아에게 예수님께 부탁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바로 '대신 부탁해달라는 기도', 소위 가톨릭의 '전구기도'입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마리아에게 전구기도를 하라는 가톨릭의 가르침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아전인수격 해석인 것입니다.

과연 이 구절이 마리아의 위대성을 나타내는 것인지, 살펴봅시다.
마리아가 포도주가 필요하다고 한 말에 대해,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답변을 하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사할 희생,즉 피(포도주)흘림을 할 때가 아직은 아니다라는 뜻이며,
예수님은 마리아의 우문에 대해 이런 현답을 하심을통해
예수님 자신에게 주어진 미래의 사명을 미리 언급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사할 희생을 하실 것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사하는 사명을 달성할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나타내시기위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증거를 보여주신 것이지,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부족한것을 해결해 줄 목적으로 기적을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포도주가 부족하면 더 사다먹을 일 아닙니까?
그런 것은 예수님의 구속사와 상관없는 일상사일뿐이므로,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렇듯 예수님의 구속사적 사명에 무지하였으며, 예수님의 구속사와 상관도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이런 우문을 이용해 현답과 기적으로
앞으로 다가올 예수님 자신의 사명인 피흘리는 희생을 하실것과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있음을 비유로 나타내신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께 우문을 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현답을 통해 예수님의 사명을 알리셨으며,
표면적으로는 형제들의 요구처럼 유대로 올라가셨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인류의 죄를 사하고
참 예루살렘인 하늘에 올라가실 일은 그때가 아닌, 그 후에 있을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청탁이 잘먹히므로 마리아에게 기도하라는
가톨릭의 이런 성경해석은 참으로 추접한 것입니다.
성경 잘 모르는 사람을 속여서 자신들의 우상숭배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외의 대상에게 기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상숭배입니다.
전구기도는 기도가 아닙니까?
전구기도든 뭐든, 하나님외의 대상에게 기도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된 자신을 더럽힌 것이며, 따라서 심판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요한복음에서 마리아가 나오는 두번째 내용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실때,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모가 동시에 등장한 내용입니다.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역시 여기서도 마리아가 한 일은 전혀 없고,
단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요한을 아들로 소개하셨습니다.
또 요한에게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소개하셨습니다.

가톨릭은 이 부분을 근거로 모든 사람들은 마리아의 아들이며,
따라서 마리아를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로 여겨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억측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구속사적 의미를 지닌 비유적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마리아에게 요한을 아들로, 요한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소개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어서 마침내 인류가 구원받게 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어머니)에 마침내 그 백성(아이)이 생겼다는 비유와
아이(백성)에게 마침내 어머니(예루살렘)가 임재했다는 비유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있었던 예언이며,
이 예언을 예수님께서 구속사적으로 성취하셨음을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아래의 이사야서에 나오는 두 예언을 봅시다.

먼저 어머니(예루살렘)에게 아이(백성)가 생긴다는 예언을 봅시다.

이사야서 49: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로 장식을 삼아 몸에 차며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이처럼 구약성경에는 구원이 "어머니에게 아이가 생기는 것"으로 비유되어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이(백성)에게 어머니(예루살렘)가 생겨 그 품에서 살게 되는 예언입니다.

이사야서 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이렇듯이 구약성경에는 구원이 "아이가 기댈 어머니를 갖게 되는 것"으로 비유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세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어주기위한 말씀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마침내 인류를 구원할 과업을 완수하셨다는,
구속사적 의미를 지닌 상징적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신 다른 말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목마르다 하신 것은,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라는 구절로 알 수 있듯이,
구약성경의 구속사적 예언이 성취됨을 보이시려하신 것입니다.
그 예언은 아래의 예언입니다.

시 69:21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위의 시편 69:21 의 후반구절인 "목마를때 식초를 준다"는 이 시편의 이 예언이 성취되게 하시려고
목마르다는 말씀을 하시고 사람들이 신 포도주(포도식초)를 주게 하신 것이지,
목마른 사람에게는 식초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그 앞의 구절인 "쓸개를 준다" 라는 예언은 십자가상에 달릴때 성취되었습니다.

마 27: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

그런데도 가톨릭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마리아가 모든 사람의 어머니임을 교훈하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더구나 가톨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마리아가 예수님 옆에서 마음이 아팠던것이 인류의 죄를 사하는데 기여했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펼칩니다.
즉, 예수님의 고난뿐 아니라, 마리아의 고민도 인류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의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배교적 주장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이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이지,
마리아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거나 구원받는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갈 2:16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갈 3:22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롬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4:1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오로지 예수님의 고난을 통한 구속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메시야 옆에서 마음의 괴로움을 당한 자의 공로가
인류가 구원받거나 죄사함받는데에 먼지만큼이라도 도움을 준다는 구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주장은 전혀 성경과 무관하며 예수님의 구속사를 비하하고 격하하는 배교적 주장인 것입니다.

이런 배교적 주장이 모자라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아예 한술 더떠서,
마리아가 저세상에 가서도 인류를 구원받게하는 구원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께서는 이
구원 임무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 주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62

가톨릭이 마리아가 인류의 구속에 같이 기여하는자라는 논리를 펴는 진짜 이유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마리아를 높일 빌미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마리아는 앞서 살펴봤듯이, 예수님의 구속사역중에 단 3번 등장하고,
복음서이후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내용중에서는 직접적으로 1번 간접적으로 1번 언급될 뿐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를 높일 근거가 신약성경에는 전무하므로 가톨릭은 구약성경으로 마리아를 증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이처럼 구약성경이 메시야, 곧 구속자를 증거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서
가톨릭은 마리아를 예수님과 같이 구원임무를 수행한 구속자로 간주함으로써
구약성경의 많은 예언들을 마리아를 예언한 것으로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
즉, "마리아가 구약성경에 이처럼 많이 나오고 구약성경이 마리아를 예언하고 있으므로,
마리아숭배는 정당하다" 라고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톨릭의 성경해석은 프로테스탄트와 다릅니다.
프로테스탄트는 신약성경의 마리아와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자들을
이스라엘(천국), 또는 인류에 대한 비유로 해석하지만,
가톨릭은 신약성경의 마리아를 예수님과 함께 인류의 죄를 사해준 자로 보며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자들을 죄다 마리아에 대한 예언으로 봅니다.
예를들면 하와,라헬,미리암,드보라,한나등 공식적인 이름을 가진 여자들뿐 아니라,
선지서에서 이름없이 모호하게 지목되는 여자들까지도 모두 마리아로 해석하며,
그 여자들의 모든 행동을 마리아의 미래에 수행할 구속사적 행동을 예언한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미리 증거하는 책입니다.
따라서, 가톨릭이 구약성경이 마리아를 증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가톨릭에 있어서 마리아가 또 다른 그리스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가톨릭에서 뭐라고 변명하더라도 그들의 마리아에 대한 교리들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가톨릭의 주장에 의하면 마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고,일평생 무죄했으며,
자신의 심적희생으로 인류의 죄를 사했고,
부활승천하여 능력으로 자신의 무죄성과 위대성을 입증한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들로부터 찬양받고,기도받고,배례받고,분향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닌 새로운 신,
초대교회이후 새로이 생겨난 신이 아니면 뭡니까?

신 32: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