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또 거짓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또 하나의 질문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어떻게 하면 원죄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교인들의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 것이“세례(영세)라고 불리우는 의식에 의해서 원죄의 정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이다. 교회 지도자들의 답변에 뒤이어 또 하나의 질문이 들어 왔는데, 그것은 “세례(영세)받지 않은 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참으로 끔직한 것이었는데, “세례(영세)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서 영원히 타는 지옥 불에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세례(영세)를 미처 받기 전에 죽은 어린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있어서 교회의 그러한 답변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었을 것이다. 중세기는 어린아기의 사망률이 매우 높던 때였다. 자신들의 아기가 영원한 지옥불에서 끝없이 고통당하고 있을 것을 상상하는, 부모들, 진실하지만 무지한 그리스도인 부모들의 고뇌는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즉각적으로 교인들의 고뇌를 해소시킬 수 있는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하였다. 그래서“연옥”과“림보”라는 기상천외한 것들이 발명되게 이르렀다. 연옥은 하늘도 아니며 지옥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과 지옥의 중간에 해당하는 곳이며, 림보는 천당은 아니지만 연옥이나 지옥처럼 불타는 고통은 전혀 없는 곳이다. 교회는 이러한 연옥과 림보를 교인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제시하는 그러한 해결책으로도 아기를 잃어버린 부모의 아픈 심정을 완전히 달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드디어“유아 세례”라는 의식을 만들어 내기로 결정하였다. 출산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산모의 배 위에 신부가 물을 뿌리면서 이제 유아와 산모가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하는 유아 세례야말로 교인들의 요구를 완전하게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한 신학자의 잘못된 사상이 오류에서 오류로 발전되게 되었는데, 결국에는 그러한 오류들이 교회의 정식 교리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아퀴나스와 바벌라드 같은 신학자에 의해서 어거스틴의 이론이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6세기 초에 위대한 종교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개혁자들이 교회의 부패와 오류에 대해서 대항하였지만, 천년에 걸쳐서 뿌리 깊이 박혀있던 오류의 근원을 송두리채 뽑아내는 일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구교를 대항하여 개신교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어거스틴의 이론은 개신교회 중심부까지 들어와서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루터가 죽고 나서 그의 동료 개혁자인 멜랑톤이 루터 교회를 예정론에서 끌어냈지만, 장로교회를 수립한 요한 칼빈이나 요한 낙스는 예정론을 받아 들였다. 그 후에 감리 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에 의해서 예정론이 거절되고,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이 오류로서 지적되었지만, 여전히 현대 기독교 안에 이러한 가르침들이 넘실거리고 있다. 이기적이고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오류들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진리를 거절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어거스틴과 그의 후예들이 수립한 거짓 교리들이 소위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교파에서도 공식적인 가르침으로 채택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 오늘날 교파가 갖는 의미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어떤 교파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 보다는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진리를 올바로 믿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살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예정론과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가르침, 그리고 십자가에서 율법이 폐하여졌으므로 십계명은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도덕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도덕률 폐기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결코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가르침이야말로 교회를 세속적이고 무능력하게 만들어 가는 장본인이다. 누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는가? 마지막 시대에는 진리 위에 굳건히 서있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구원에 관한 진리는 이렇게 믿어도 되고 저렇게 믿어도 되는 가르침이 아니다.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너희가 믿음 위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린도후서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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